유우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응교, 세자시강원필선,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호경도암(景陶庵)
  • 자대재(大哉)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684년(숙종 10)
  • 사망 연도미상
  • 본관기계(杞溪,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
  • 주요 관직헌납(獻納)|사간|응교|세자시강원필선|집의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응교, 세자시강원필선,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대재(大哉), 호는 경도암(景陶庵). 유희증(兪希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석(兪晳)이다. 아버지는 유명홍(兪命弘)이며, 어머니는 이윤(李綸)의 딸이다. 유명중(兪命重)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판관으로서 1739년(영조 15)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이 되고, 1741년에 헌납(獻納), 이듬해에 수찬(修撰)·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수찬에 재직하고 있을 때 전염병이 창궐하여 사망자가 속출하자, 하늘의 뜻을 헤아려 임금은 스스로 반성하여 올바른 정치를 행하도록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 뒤 대동찰방(大同察訪)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43년에 영의정 김재로(金在魯)의 요청으로 사헌부장령에 제수되고, 동지사·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헌납(獻納)·사간·응교·세자시강원필선·집의·보덕 등을 거쳐 1749년 승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청선고(淸選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