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 당시의 고구려 군인.
내용
이 때 유유는 밀우(密友)와 같이 위군의 진영에 가서 항복을 청하는 척하면서 위의 지휘관을 살해하고 함께 죽음으로써, 고구려가 위군에 대한 일대 반격을 가하여 위군을 패주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관구검의 고구려 침입기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위서 제왕방기(齊王芳紀),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에는 246년 한 차례 침공으로 되어 있으나, 『삼국지(三國志)』 위서 관구검전과 『삼국지(三國志)』 동이전 및 『북사(北史)』 고려전에는 244년과 245년 두 차례 침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관구검군을 격퇴시킨 뒤 고구려는 유유에게 구사자(九使者 : 大使者의 오기로 추정됨)를 추증하였고, 그의 아들 다우(多優)도 대사자(大使者)가 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지(三國志)』
- 『자치통감(資治通鑑)』
- 『북사(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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