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병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부수찬에 제수되어 평지의 진전(陳田: 토지대장에는 등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경작하지 않는 토지)에 대한 면세를 건의하는 등 구휼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 뒤 장령 · 수찬 · 교리, 사헌부집의, 홍문관부응교, 의정부사인, 상의원정을 거쳐 수선(修繕: 건물이나 도로 및 성지의 수리)을 감독한 공로로 당상관에 올랐다.
1555년(명종 10) 외직인 전주부윤으로 나갔다가 형조참의 · 동부승지를 거쳐, 1562년(명종 17) 성절사로 명나라에 사은하고 돌아왔다. 그 뒤 병조참판 · 청홍도관찰사를 역임하고 동지중추부사의 한직을 맡았으나 곧 태릉 수릉관(守陵官)의 임무를 맡아 아들 유자신(柳自新)을 참봉으로 삼아 부자가 함께 일하였고, 이의 공으로 1자급 가계(加階: 품계가 오름)되었다.
선조가 즉위하자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가 1572년(선조 5) 형조판서로 옮겼으며, 이듬해 권철(權轍) · 유희춘(柳希春) 등과 함께 정시(庭試)의 시관(試官)으로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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