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감계와 교화를 목적으로 제작되어 널리 활용된 그림. 권계화(勸戒畵).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
빈풍칠월도와 무일도는 조선 초기부터 국왕의 성찰에 활용된 대표적인 감계화로서 왕조 말기까지 꾸준히 그려졌다. 경직도는 농사와 잠직의 생활을 월령 형식으로 구성한 빈풍칠월도와 같은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1697년(숙종 23)에 중국에서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가 전래된 이후 숙종이 다양한 경직도 병풍을 제작하여 왕세자가 머무르는 동궁에 진설하도록 하였다. 진재해(秦再奚)의 〈잠직도(蠶織圖)〉는 당시 제작 경향을 시사한다.
태종 연간부터 제작된 성군현비고사도는 고종 연간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제감도설(帝鑑圖說)』 같은 명나라 제왕학(帝王學) 교재의 유입에 따라 이를 토대로 제작하기도 했다. 1691년(숙종 17)의 《선악도병(善惡圖屛)》이 대표적이다. 현비고사도인 현비병, 후비명감, 후비가계병풍이나 행실도류 열녀도는 조선에 유입된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 『고열녀전(古列女傳)』의 영향 아래 제작되었다. 이처럼 성군현비고사도는 당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하고 왕의 권위를 확립하거나 합법적인 통치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양정도와 성적도는 왕세자의 심성·효행 교육을 위해 제작된 감계화이다. 1413년(태종 13) 『효행록(孝行錄)』을 전거로 효자도 병풍을 제작하였다는 기록은 일찍부터 왕세자의 교육에 『효경(孝經)』이 중요시된 정황을 시사한다. 숙종~정조 연간에는 양정도와 성공도(聖功圖), 그리고 성적도 제작이 선호되었으며 특히 『소학(小學)』 이나 『양정도해(養正圖解)』를 전거로 하였다. 숙종 연간에 김진여(金振汝)가 그린 《성적도첩(聖蹟圖帖)》, 영조 연간의 《선가법첩(善可法帖)》이 그러하다. 한편 행실도는 유교의 기본 원리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백성들에게 교화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다. 1434년(세종 16) 『삼강행실도』를 시작으로 『속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로 이어졌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왕과 국가의 회화』(박정혜 외, 돌베개, 2012)
- 「역대 제왕의 고사를 그린 조선 후기 왕실 감계화」(김영욱, 『미술사학』 28, 2014)
- 「조선시대 여성 소재 감계화 연구: 현비고사도와 열녀도의 정치적 성격을 중심으로」(문선주, 『역사민속학』 4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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