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괴석도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를 그린 그림이다. 괴석도는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이후 19세기 문인들의 바위 애호 풍조와 함께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문인들은 변하지 않는 군자의 모습이나 오래 사는 장수를 표현하기 위해 괴석도를 그렸다. 조선 말기 대표적인 괴석도 화가는 수직으로 상승하는 괴석을 그린 정학교이다. 현재 심사정·강세황의 괴석도를 비롯하여 이정직·정학교의 괴석도 등이 남아 있다. 조선 시대 괴석도는 중국의 괴석도 전통을 기반으로 나름의 개성적인 화풍을 보여 준다.
정의
기이한 형상의 바위를 그린 그림.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주목되는 화가는 괴석을 전문적으로 그린 정학교(丁學敎)이다. 정학교는 세로로 긴 화면에 농묵과 담묵을 적절히 사용하여 수직으로 상승하는 괴석의 형상을 즐겨 그렸다. 그의 괴석도는 구멍이 뚫린 괴석과 날카롭고 각진 괴석으로 구분된다. 특히 층층이 쌓아 올린 괴석 형상은 청대 서화가 주당(周棠)의 괴석도 혹은 청대에 간행된 『해상명인화보(海上名人畵譜)』에 수록된 괴석도의 영향을 짐작케 한다.
정학교에 의해 크게 유행한 괴석도는 이후 김영(金瑛) · 윤용구(尹用求) · 양기훈(楊基薰) · 안중식(安重植) · 강진희(姜璡熙) 등 문인 서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수직으로 상승하는 구멍 뚫린 각진 괴석도 화풍을 계승하였다. 김영은 부드러운 필묵과 담채, 먹점을 특징으로 하는 괴석도를, 윤용구는 부드러운 담묵 선묘로 파도치듯 윤곽을 그리거나 직사각형의 괴석 등 개성적으로 해석한 괴석도 화풍을 형성하였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 1853~1939)의 괴석도」(김취정, 『인물미술사학』 11, 2015)
- 「이정직(李定稷)의 《석정가묵(石亭佳墨)》과 석인본(石印本) 『개자원화전』」(유순영, 『미술사연구』 24, 2010)
- 「한양대학교 박물관 소장 정학교 필 〈괴석도〉」(배원정, 『고문화』 75, 2010)
- 「19세기 후반 상해에서 발간된 화보들과 한국 화단」(최경현, 『한국근대미술사학』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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