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팽성(彭城). 자는 원보(原甫), 호는 죽간(竹諫). 북송(北宋)에서 태어나서 고려로 망명하였다. 아버지는 북송의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유채(劉采)이다.
1082년(문종 36) 북송 신종(神宗) 때 간신(姦臣)들에게 참소당하여 임팔급(林八及)·설인검(薛仁儉)·허훈(許薰)·유전(劉筌)·최호(崔沍)·권지기(權之琦)·공덕수(孔德狩) 등 팔학사와 함께 고려로 망명하여 경주(慶州) 기계현(杞溪縣)에 도착하여 평생을 학문 연마에 정진하였다.
유전은 “동방의 이학지조(理學之祖)라 하여 덕행이 주공(周公)·소공(召公)·태공(太公)에 비할 수 있으므로 마땅히 사우(祠宇)에 봉안하여 제향(祭享)해야 한다”는 대제학(大提學) 박상충(朴尙衷) 등의 상소에 의하여 숭의전(崇義殿)에 배향되고 모든 은전(恩典)이 내려졌으며, 평장사(平章事)에 증직되었다. 시호(諡號)는 문양(文襄)이다. 저서로는 『죽간일고(竹諫逸稿)』 4권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