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화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상의원주부, 통진현감, 회덕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반구당(伴鷗堂)
  • 후성(後聖)
인물/전통 인물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1680년(숙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통진현감|회덕현감
  • 출생 연도1599년(선조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국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반구당유고 / 유지화 미디어 정보

반구당유고 / 유지화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상의원주부, 통진현감, 회덕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희춘(柳喜春)이고, 아버지는 사복시주부 유광복(柳光復)이며, 어머니는 어머니는 승지 홍치상(洪致祥)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2세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나 계모를 지성으로 섬겨 이웃의 칭찬을 받았다. 1633년(인조 11)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근친하는 일로 귀향하였다가, 병자호란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진·회덕 현감 등에 제수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 뒤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문에 ‘반구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당대의 명류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만년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추록되고 통정대부에 승서(陞敍)되었으나, 조정의 명이 하달되기 전에 죽었다. 1804년(순조 4) 효자의 정문이 세워졌다. 김제 남산서원(南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 - 『진주유씨문헌록(晉州柳氏文獻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