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상의원주부, 통진현감, 회덕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 근친하는 일로 귀향하였다가, 병자호란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진·회덕 현감 등에 제수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 뒤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문에 ‘반구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당대의 명류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만년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추록되고 통정대부에 승서(陞敍)되었으나, 조정의 명이 하달되기 전에 죽었다. 1804년(순조 4) 효자의 정문이 세워졌다. 김제 남산서원(南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 『진주유씨문헌록(晉州柳氏文獻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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