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틀은 왕골·부들·짚 따위로 자리를 짜는 틀이다. 삼국시대에 자리를 만드는 도구를 관할한 석전이라는 관청이 있었다. 고려시대 왕실에서는 문석·채석·화문석·용수석 등 다양한 자리를 사용하였고, 국가 길례 때도 왕골자리를 깔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자리를 제작하는 석장을 지역별로 두었고, 여러 지역에서 왕골자리를 진상하도록 하였다. 볏짚이나 보릿짚으로 성글게 짠 짚자리는 농작물을 건조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였고, 왕골로 만든 화문석이나 용문석은 상류층에서 방안에 깔아두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자리는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바닥에 까는 물건으로 주로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왕골 · 부들 · 갈대 따위로 짜서 만든다”라고 되어 있다. 자리를 만드는 틀도 날줄[경사]이 드러나는가에 따라 틀의 모습이 다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자리틀은 짚자리나 강화도 화문석(花紋席)처럼 고드랫돌을 활용해서 날줄이 드러나게 짜는 것이다. 18세기 김홍도의 『김홍도필풍속도화첩』 중 「자리짜기」에 등장하는 남자는 자리틀의 고드랫돌을 이용하여 짚자리를 짜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전라남도 함평과 나주에서는 왕골 돗자리를 짤 때 고드랫돌 대신 톳 틀에 촘촘하게 날줄을 끼운 바디를 눌러 돗자리를 만든다. 동일한 왕골 재료로 돗자리를 만들어도 지역에 따라 자리틀의 형태가 차이를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조(職官條)에 자리와 자리 만드는 도구를 관할한 석전(席典)이라는 관청명이 보이고, 거기조(車騎條)에 오두품과 육두품 수레의 휘장[幰]은 왕골자리를 사용한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자리를 만들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왕실에서는 문석(文席) · 채석(彩席) · 화문석 · 용수석(龍鬚席) 등 다양한 자리를 사용하였으며, 사직(社稷), 풍사 · 우사 · 뇌신 · 영성 제의, 얼음을 저장할 때와 꺼낼 때 거행한 사한(司寒) 제의 등 국가 길례(吉禮) 때도 왕골자리를 깔도록 하였다. 북송(北宋)의 사신 서긍(徐兢)은 자리에 대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정교한 것은 침상과 평상에 깔고 거친 것은 땅에 까는데, 매우 부드러워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는다. 검은색과 흰색이 서로 섞여 무늬를 이루고 청자색 테가 둘렸다. 더구나 침상에 까는 자리는 매우 우수하여 놀랍기만 하다”라고 묘사하였을 정도로 뛰어난 품질이어서 외국과의 교역품으로도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자리를 제작하는 석장(席匠)은 지역별로 두었고, 여러 지역에서 왕골자리를 진상하도록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돗자리를 만드는 석장이 충청도에 58명, 경상도에 276명, 전라도에 58명 등 총 392명이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왕골자리[莞席] · 돗자리[草席] 생산 지역으로 해당 관할의 지명이 많이 등장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국가 제의에 왕골자리를 사용하였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사직, 종묘, 풍운뇌우, 선농, 기우제 등 길례 때 왕골자리를 깔도록 정하였다.
자리를 엮는 제작 기법은 은경밀직(隱經密織)과 노경소직(露經疎織)으로 구분한다. 은경밀직은 한자에서도 드러나듯이 날실이 보이지 않으면서 촘촘하게 짜는 방법으로 톳 틀을 사용한다. 이때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작업을 한다. 한 사람이 벌려진 틈 사이로 대바늘을 이용하여 씨실을 집어넣으면, 다른 사람은 바디를 눌러 날실로 엮는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날줄이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 날줄은 예전에는 삶은 칡 껍질을 말려 만든 청얼치 등 질긴 천연섬유를 사용하였으나 요즘에는 면실이나 나일론 실을 사용한다.
노경소직은 날줄이 보이면서 성글게 짜는 방법이다. 틀은 곡식을 갈무리하는 섬틀과 유사하고, 도리에 일정 간격으로 날눈을 파 두고, 고드랫돌을 앞뒤로 걸쳐 둔다. 도리에 씨줄을 놓고 고드랫돌로 도리의 앞뒤를 교차해 나가면서 짠다. 고드래에 감긴 실은 날줄이 되고, 그 위에 놓이는 밀짚이나 왕골은 씨줄이 되어 자리를 엮어 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리 표면을 엮어준 날줄이 보인다. 노경소직은 제작이 쉬워 가정에 필요한 돗자리를 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였고, 왕골로는 강화 화문석이 대표적이다. 고드랫돌은 과거에는 공깃돌을 사용하였으나 금방 벗겨지는 단점이 있어, 근래는 쇠 고드래를 사용한다.
재료에 따라 자리틀로 엮은 자리의 용도가 달랐다. 볏짚이나 보릿짚으로 성글게 짠 짚자리는 농작물을 건조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였다면, 왕골로 만든 화문석이나 용문석은 상류층에서 방안에 깔아두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왕골은 봄에 심어 7~8월에 수확한 후 건조하고 쪼개고 염색하는 공정을 거친 후 자리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품이 많이 갔다. 그 대신 가격이 비싸 농가의 부업 목적으로 제작하였다.
자리 제작과 관련하여 1996년에 왕골로 돗자리를 만드는 완초장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02년에 등메장이 서울특별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자리 짜기 전통 기술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