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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 밀 · 보리 · 조 따위의 이삭을 떨어낸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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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벼 · 밀 · 보리 · 조 따위의 이삭을 떨어낸 줄기.
내용

볏짚 · 밀짚 · 보릿짚 · 조짚 등으로 부르며, 이 가운데 우리 민족과 관련이 가장 깊은 것은 볏짚이다. 이 땅에서 약 4,000여 년 전부터 벼농사가 시작된 이래 우리는 볏짚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으며, 특히 농촌생활에 있어 볏짚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짚으로 여러 가지 농기구를 만들었던 것은 물론이고, 지붕에 덮거나 벽에 둘러치는 등의 건축자재로 썼으며, 바닥에 까는 깔개로도 이용하였다.

정월 등 민속행사 때에 당기는 줄의 바탕도 짚이었고, 재액을 물리쳐주는 신앙의 대상들 가운데 짚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으며, 짚은 모자나 옷 그리고 신발의 자재가 되기도 하였다.

농촌의 생활은 짚이 없었더라면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볏짚 한 오리는 매우 약하지만 서너 오리를 함께 꼰 줄은 든든해서 무엇을 얽거나 매거나 두르는 데에 쓰며 줄과 줄을 꼬아 만든 밧줄은 배에서도 긴요한 장비의 하나였다.

농가에서는 짚으로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들어 썼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곡물을 갈무리하는 섬이나 가마니이지만 둥구미나 멱둥구미도 요긴한 그릇이었다.

특히, 둥구미나 멱둥구미는 필요에 따라 작거나 크게 만들 수 있어 매우 편리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큰 독까지 만들어서 옷을 비롯한 마른 물건을 넣어두었으며, 씨를 뿌리거나 갈무리하는 작은 오쟁이나 종다래끼도 짚으로 떠서 썼다.

짚을 재료로 삼은 깔개류에는 멍석을 비롯해 거적 · 자리 · 도래방석 · 두트레방석 등이 있다. 멍석이나 거적 · 자리는 고추 따위의 농작물을 널어 말리는 데 많이 썼지만, 방에 깔고 지내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짚은 집짐승을 기르는 데에도 큰 구실을 했다. 잘게 썬 짚은 소의 여물이 되었고, 짚으로 뜬 어리에 병아리를 길렀으며 둥우리에 달걀을 받았다. 또, 새끼돼지의 우리를 새끼로 짓는 일도 있었다.

지붕에 볏짚을 덮었던 것은 다 아는 일이거니와, 흙담집에서는 벽이나 담 아랫도리에 짚으로 엮은 날개를 둘러쳐서 비바람을 가렸다. 벽을 치는 흙을 갤 때에는 짚을 잘게 썰어넣고 버무려서 힘을 보탰으며 짚으로 울을 두르기도 했다. 그리고 뒷간 따위의 문은 거적문이라 하여 짚을 떠서 늘어뜨렸다.

우리는 볏짚에 신령이 깃들어 있어 주력**呪力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아기가 태어나는 산방(産房)에는 짚을 바닥에 깔거나 귀퉁이에 세워서 산모와 어린 생명의 무사안녕을 빌었다.

그리고 이 짚은 뒤에도 산신(産神)으로 받들며 명절 때마다 상을 따로 차려 놓았다. 또, 상례(喪禮) 때 노제(路祭)를 지내는 경우 짚을 먼저 깔고 그 위에 제물을 놓았으며, 저승사자를 위한 짚신을 대문 밖에 마련해 두었다.

왼손으로 비벼 꼰 이른바 왼새끼에는 특별한 힘이 있어 질병이나 잡귀를 물리쳐 준다고 여겼다. 금줄 또는 인줄이라 불리는 줄은 새 짚 가운데 깨끗한 것으로 골라서 왼새끼를 꼬아 만드는데, 신당이나 대문 · 장독 등에 걸거나 둘러서 잡귀를 쫓는 동시에 부정한 사람의 접근도 막았다.

따라서, 왼새끼에는 신성한 장소를 구별하고 부정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는 셈이다. 금줄을 왼새끼로 마련하는 것은 잡귀가 왼쪽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나, 일상의 공간과 성스러운 공간을 구별하려는 의도의 결과로 생각된다.

짚은 온갖 악운의 대용물로도 이용했는데, 제웅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정월 열나흗날 짚으로 허수아비처럼 만들어 동전 몇 닢과 사람의 이름, 태어난 해의 간지 따위를 적은 쪽지를 끼워넣어 길에 버리면 이것을 주워든 아이들이 동전만 제주머니에 넣고 제웅은 멀리 던진다.

이것이 ‘제웅치기’로서 한 해 동안의 악운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충청북도 단양 일대에서도 동제를 지내기 전 마을 어귀에 쳐놓은 금줄에 짚으로 만든 말에 태운 제웅을 걸어둔다.

제웅이 마을의 온갖 불행을 짊어지고 말을 달려 멀리 가버린다는 뜻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위도에서 해마다 벌여 오는 띠뱃놀이도 이와 같다.

짚 · 새 · 싸리 따위로 엮어 만든 배(길이 3m, 너비 2m 정도)에 떡 · 밥 · 고기 · 과일과 다섯 명의 허수아비 사공을 태우고 용왕굿이 끝난 뒤 바다 가운데로 떠나보내면 이와 함께 마을의 모든 악운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일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관습이 있으며, 특히 집집마다 배를 만들어 바다로 띄우는데 다른 집의 것보다 빨리 나가야 고기를 많이 잡는다고 믿는다. 이처럼 띠배가 악운을 멀리 보낼 뿐 아니라 행운도 가져다 준다는 관념은 남해안과 제주특별자치도에도 퍼져 있다.

농사의 흉풍을 점치거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벌이는 줄당기기나 고싸움에 쓰는 줄도 짚으로 엮은 새끼가 바탕이 되었고, 특히 이긴 쪽의 줄에는 영검한 기운이 있다고 믿어 떼어 팔았다.

이것을 거름으로 쓰면 곡물이 잘 자라고 소를 먹이면 병이 없으며 지붕에 얹으면 한 해 동안 무사 태평하리라고 여겼다. 또, 이것을 배에 모셔 두면 고기를 많이 잡고 재난도 막는다고 하여 뱃사람들이 탐냈다.

줄을 당기고 난 뒤에 당산에 감아두는 호남지방의 풍속도 이 줄이 풍년을 가져다 주리라는 기대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짚은 한 가정의 재운(財運) 그 자체이기도 하였다.

이를 관장하는 업신은 모두 짚으로 만들며, 재산이 불어나기를 바라서 해마다 덧 덮어 주므로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높아지게 마련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어떤 집에서는 지붕마루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이처럼 짚이 재운의 상징이 되었던 것은 짚이 이삭을 낳은 모체였기 때문이다. 볏짚더미는 곧 곡식 가마였다. 단지 안에 쌀을 담고 뚜껑을 덮어 모시는 터신[土地神]에 짚으로 짠 주저리 를 씌워 두는 풍습도 자체를 보호하려는 목적보다 짚이 지닌 주력(呪力)에 대한 믿음이 그 동기이다.

또, 농가에서는 볏가릿대라 하여 정월 열나흗날이나 보름날 짚으로 둑처럼 만들어 벼 · 수수 · 조 · 기장 따위의 이삭을 싸서 장대에 매달아 두었다가 2월 초하룻날 내린다.

이 때 짚 안의 곡식을 꺼내며 “벼가 몇만 석이요”, “수수가 몇천 석이요”, “조가 몇백 석이요”하여 그만한 수확이 있었던 것처럼 외친다. 이것도 짚이 풍년을 가져다주리라고 기대하며 벌이는 모방의례의 하나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짚은 우리의 농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재료로서 크나큰 구실을 해왔다. 짚이 없는 농촌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벼알 생산량이 많은 통일벼 재배가 정부의 적극적인 권유정책에 따라 널리 퍼지면서 일종의 짚파동이 일어났다. 통일벼는 일반벼 품종에 비해 짚의 길이가 짧아서 짚에 의존해 온 농가생활에 큰 타격을 준 것이다.

무엇보다 다급했던 것이 지붕에 덮을 절대량이 모자란 점이었다. 여기저기 사람을 놓아서 비싼 값에 볏짚을 사서 실어날라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소를 기르는 집에서는 조금씩 사모으기까지 하였다.

나일론으로 꼰 줄과 마대로 만든 곡식주머니가 나오기는 하였으나 짚의 절대량 부족은 큰 불편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지붕개량사업이 본격화하고 여러 가지 플라스틱제품의 대량생산 등으로 농가에서 짚이 차지하였던 비중은 점점 떨어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짚으로 결어 만든 그릇이나 기구 따위를 농촌에서조차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짚에 대해 품어 왔던 신앙심도 마찬가지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겨울철의 긴 농한기에 가마니를 짜서 가계에 보탰던 일은 먼 과거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볏짚의 효용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볏짚은 양송이나 느타리버섯 재배에 거름으로 쓰이며, 제지용 펄프 재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농기구』(김광언, 문화재관리국, 1969)
『한국농기구고』(김광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6)
『한국 짚 문화』(국립민속박물관,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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