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명한(李明漢)이 지은 금강산 기행문.
구성 및 형식
내용
이명한은 두 아들과 함께 금성(金城)으로부터 단발령을 따라 금강산에 들어가서 회양과 춘천에서 온 두 관원과 함께 장안사에서 하룻밤을 잔다. 산행의 둘쨋날인 4월 14일에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서 시왕백천동(十王百川洞)을 따라 영원사(靈源寺)와 대소 송라사(松蘿寺)를 찾아보고 표훈사(表訓寺)에서 잠깐 쉰다. 작자는 점심때가 되어 정양사(正陽寺) 동루(東樓)에 앉아 금강산 1만2000봉을 감상하면서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그 때에 평생을 두고 생각해오던 친구들을 만난다.
산행 3일째 되는 날에 산의 안개가 흩어지고 천지가 말끔히 개고 산과 바위가 씻은듯 깨끗하여 산 속의 초목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명한은 이 명산을 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간절한 기원에서 이러한 현상이 비롯되었다고 여긴다. 그 곳의 승려들도 수십년 내의 보기 드문 좋은 날씨라는 것이다.
금강산의 뛰어난 경치를 보고 친구인 인근지방의 3태수들과 함께 유쾌한 놀이를 한 경험이 이명한이 「유풍악산기」를 짓게 된 동기라 할 것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백주집(白洲集)』
- 『동국산수기(東國山水記)』(최철 역, 덕문출판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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