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풍악기

  • 문학
  • 작품
조선 후기에 이명한(李明漢)이 지은 금강산 기행문.
이칭
  • 이칭유풍악산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철 (연세대학교, 국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백주집 / 유풍악기 미디어 정보

백주집 / 유풍악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이명한(李明漢)이 지은 금강산 기행문.

구성 및 형식

그의 문집인 『백주집(白洲集)』 권16에 기재되어 있다. 이명한이 1640년(인조 18) 4월 13일에서 16일까지 금강산의 여러 유명사찰과 주변의 경관을 보고 느낀 점에 대하여 기록한 글이다.

내용

작자는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을 중국인들도 한번 보고자 원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출생하여 가보지 못한다면 한이 될 것이라 말하면서 기행문을 시작하고 있다.

이명한은 두 아들과 함께 금성(金城)으로부터 단발령을 따라 금강산에 들어가서 회양과 춘천에서 온 두 관원과 함께 장안사에서 하룻밤을 잔다. 산행의 둘쨋날인 4월 14일에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서 시왕백천동(十王百川洞)을 따라 영원사(靈源寺)와 대소 송라사(松蘿寺)를 찾아보고 표훈사(表訓寺)에서 잠깐 쉰다. 작자는 점심때가 되어 정양사(正陽寺) 동루(東樓)에 앉아 금강산 1만2000봉을 감상하면서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그 때에 평생을 두고 생각해오던 친구들을 만난다.

산행 3일째 되는 날에 산의 안개가 흩어지고 천지가 말끔히 개고 산과 바위가 씻은듯 깨끗하여 산 속의 초목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명한은 이 명산을 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간절한 기원에서 이러한 현상이 비롯되었다고 여긴다. 그 곳의 승려들도 수십년 내의 보기 드문 좋은 날씨라는 것이다.

금강산의 뛰어난 경치를 보고 친구인 인근지방의 3태수들과 함께 유쾌한 놀이를 한 경험이 이명한이 「유풍악산기」를 짓게 된 동기라 할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이명한의 「유풍악산기」는 매우 짧다. 그 속에는 간결하면서도 깊은 사색, 인생에 대한 회한과 관조가 드러나 있다. 이것은 자연을 통한 내적 성찰의 한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하겠다. 특히, 이 글의 끝부분에서 산천과 인간, 절후와 시세의 변화를 서로 연결시켜가면서 금강산 구경의 의의를 부각시키고자 한 작자의 의도는 주의를 끌 만하다.

참고문헌

  • - 『백주집(白洲集)』

  • - 『동국산수기(東國山水記)』(최철 역, 덕문출판사,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