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부감전’이라고도 한다. 서울인 경주의 행정을 6부별로 나누어 맡던 관청으로 오늘날의 구청에 해당하였다. 그러나 신라시대에는 6부의 품격에 일정한 차등이 있어, 급량부(及梁部)와 사량부(沙梁部)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본피부(本彼部), 나머지 모량부(牟梁部) · 한기부(漢祇部) · 습비부(習比部)는 가장 낮았다.
이것은 육부소감전의 관원조직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즉, 급량부와 사량부에는 장관직을 감랑(監郎)이라 하여 각기 1인이었으며, 그밖에 대내마(大奈麻)가 각기 1인, 대사(大舍)가 각기 2인, 사지(舍知)가 각기 1인이었다. 다만, 사(史)의 경우에는 급량부에 6인, 사량부에 5인을 두었다.
또한, 본피부에는 감랑 1인 이외에 감대사(監大舍) 1인, 사지 1인, 감당(監幢) 5인, 사 1인을 두었고, 모량부에는 감신(監臣) 1인 이외에 대사 1인, 사지 1인, 감당 5인, 사 1인을 두었다. 한편, 한기부 · 습비부에는 감신이 각기 1인, 대사가 각기 1인, 사지가 각기 1인, 감당이 각기 3인, 사가 각기 1인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