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은 인간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육상경기의 기원은 인류의 발생과 함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달리고, 뛰고, 던지는 일련의 활동들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방어와 공격법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경기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의 제전 및 종교적 행사와 이러한 경기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식전행사의 일부로 달리기 · 창던지기 · 철구던지기 등의 종목이 행하여졌다. 스포츠로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서기전 776년 그리스에서 제우스신을 찬양하기 위하여 시작된 고대 올림픽에서부터이다.
제1회 대회 때부터 서기 393년까지 4년마다 실시되어 293회까지 계속되는 동안 육상을 중심으로 경기가 이루어졌다. 단순한 경기대회가 이처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출발이 종교와 밀접하게 결부되었던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는 단거리 경주만을 실시하였으나 제14회 헬싱키올림픽에는 중거리경주, 제15회 런던올림픽에는 장거리경주가 추가되었으며, 제18회 동경올림픽부터는 멀리뛰기 · 원반던지기 · 창던지기 · 단거리경주 · 레슬링으로 된 5종경기가 추가되었다. 여자경기는 스파르타에서만 실시되었으나 스파르타의 멸망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고대 올림픽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부터 점차 타락되어 394년에 폐지되었으며, 중세에는 무술을 중심으로 한 기사도(騎士道: 기사 계급의 성립에 의하여 이루어진 무사의 윤리. 용맹 · 경신(敬神) · 예절 · 염치 · 인협 · 충성 · 부녀숭배 · 노약보호 등의 덕을 이상으로 함)의 장려로 육상경기는 명맥만을 유지하는 형편이었다. 1896년 쿠베르탱에 의하여 부활된 근대올림픽에서 육상경기는 다시 활동기를 맞게 되었다.
제1회 아테네올림픽의 육상경기종목은 100m ·400m ·1,500m · 하이허들(High Hurdle) · 마라톤 · 높이뛰기 · 멀리뛰기 · 장대높이뛰기 ·3단뛰기 · 포환던지기 · 원반던지기 등이었으며, 그 뒤로도 계속 올림픽의 중심종목으로 발전하였다.
1912년 제5회 스톡홀롬올림픽 때에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발족되었으며, 1921년에 국제공통의 경기규칙과 세계기록공인제도가 채택됨으로써 육상은 완전한 경기체계를 갖추어 본격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한편, 일반 육상경기는 영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발전되었으며, 1864년부터는 케임브리지대학과 옥스퍼드대학의 대학간 경기가 최초로 이루어짐에 따라 커다란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육상경기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학교의 운동회에서부터이다. 1896년 5월 2일 동소문 밖 삼선평(三仙坪)에서 한성영어학교(漢城英語學校)의 학생들이 영국인 교사 허치슨(Hutchison) 등의 지도로 운동회를 개최하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학교운동회의 효시인 동시에 육상경기의 출발이다.
같은 해 5월 30일에는 훈련원(현재의 동대문운동장)에서 각 관립학교연합운동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에는 장동(壯洞) · 계동(桂洞) · 정동(貞洞) · 매동(梅洞) 등 초등학교 학생 181명이 참가하였는데, 초창기여서 심판의 오심으로 분쟁이 속출하기도 하였다.
1897년 4월 홍화문 밖 산 위에서 경성학당(京城學堂) 창립1주년 기념운동회가 개최되었는데, 경기종목을 보면 300보(步) ·600보 ·1,350보와 포환던지기 · 공던지기 · 멀리뛰기 · 높이뛰기 ·2인3각 · 당나귀달리기(경마 20필 참가) · 줄다리기 등이었다.
당시의 경기들은 시설이나 규칙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채 친선경기적인 성격이 짙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활기를 띠었으며 우리나라 육상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1898년 5월에는 관립외국어학교 6개 분교 연합대운동회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에서 실시한 육상종목은 포환던지기 ·100보경주 ·220보경주 ·440보경주 · 멀리뛰기 · 높이뛰기 등이었다.
이를 계기로 각급 학교에서는 해마다 운동회를 실시하였으며, 1905년 5월에는 신흥사(新興寺)에서 일반단체인 황성기독교청년회 최초의 운동회가 개최되었다.
1907년 10월과 1908년 5월, 1909년 4월에는 학부(學部) 주최로 서울 시내 관 · 사립학교연합운동회가 개최되었으나 일제는 집단적 의거가 두려워 1909년 12월에 재정난을 빙자, 각 지방의 관 · 공 · 사립학교연합운동회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1910년 5월 삼선평에서 서울 시내 사립 8개 학교 1,400여 명의 학생이 연합운동회를 개최하여 1912년까지 계속되었으나 일제의 강권으로 이듬해에 해산되었다.
그 뒤 초창기의 운동회시대를 벗어나 1920년대부터 육상경기로서의 체계가 잡혀가게 되었다. 1919년에 일본인이 주관하는 조선체육협회가 발족되어 1920년 7월에는 조선체육회가 조직되어 육상분야뿐만 아니라 체육계 전체의 체계가 수립되었다.
1921년 4월 조선체육협회의 주최로 열린 제5회 극동대회파견예선육상경기에서 김학순(金學順)이 10㎞마라톤에서 59분 55초로 우승하였으며, 이듬해 6월의 제6회 극동대회에서는 박두호(朴斗昊)가 800m에서 2분 22초 4로, 1,500m에서 윤봉현(尹鳳鉉)이 5분 5초 6으로 각각 우승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육상경기의 열은 점차 고조되어 중장거리 선수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어 1923년 11월 연희전문학교 주최로 제1회 전 조선중등교육상경기대회를 비롯하여, 1924년 6월에 전 조선육상경기대회와 전 조선여자육상경기대회가 개최되었다.
특히, 조선체육회 주체로 개최된 제1회 전 조선육상경기대회는 우리나라 육상경기의 신기원을 이룩한 경기로 평가될 수 있다.
이 때의 경기종목은 100m ·200m ·400m ·800m ·1,500m ·5,000m달리기와 마라톤 ·110m허들 · 높이뛰기 · 멀리뛰기 ·3단뛰기 · 장대높이뛰기 · 창던지기 · 원반던지기 · 포환던지기 ·400m이어달리기 ·1,600m이어달리기 등 18개 종목이었다.
이채로운 것은 참가자격에 각력(脚力: 다릿심, 걷는 힘)을 사용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는 참가하지 못한다고 하여, 인력거꾼이나 신문배달원 등의 출전을 막은 것이다.
이듬해 제2회 전 조선육상경기대회에서는 해머던지기와 5종경기를 추가한 20개 종목이 개최되었다. 1929년 10월에는 독일의 올림픽육상선수단이 내한, 최초로 육상국제경기가 이루어져 경기를 통한 일반국민의 국가의식 고취와 선수들의 기술 향상들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마라톤은 1927년 제3회 조선신궁(朝鮮神宮) 경기대회 때부터 정규 풀코스에서 공인기록이 작성되었는데, 이때 마봉옥(馬鳳玉)이 26.25마일에 3시간 29분 37초의 기록을 남겼다.
그 뒤 1931년 10월의 제7회 조선신궁경기대회에서 김은배(金恩培)가 2시간 26분 12초로 1시간 정도를 단축, 커다란 수확을 거두었으며, 1932년 제10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마라톤에서 김은배가 6위, 권태하(權泰夏)가 9위로 세계무대에의 진출을 내다보게 되었다.
1934년 4월에는 서울육상경기연맹이 조직되었고, 같은 해 5월에 열린 제10회 마닐라극동대회에서 유장춘(柳長春)이 1만m달리기에서 1위, 1,500m달리기에서 2위, 유약한(劉約翰)이 투원반과 투창에서 각각 4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당시 양정고등보통학교는 1929년 일본 간사이대학(關西大學) 주최로 제5회 중등교 한신[阪神]역전경기대회 우승을 비롯하여 이 대회에서 3연패를 하였으며, 1934년 제20회 전일본중학 육상경기선수권대회와 이듬해의 제21회 대회에서도 2연패하여 우리 민족의 역량을 당당히 과시하였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에서는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2초로 금메달을 차지하였고, 남승룡이 3위를 하여 세계를 제패하였다. 그러나 1937년에 조선체육회가 일본인단체인 조선체육협회에 흡수되는 등 일제 말기의 민족탄압이 극심하여져 육상은 다른 운동경기와 함께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1945년 광복 후 9월에 조선육상경기연맹이 조직, 발족되고, 1946년부터 육상경기선수권대회가 개최되는 등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47년 제51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는 서윤복(徐潤福)이 대회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우승하였다.
이어 1950년 제54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도 3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함기용이 우승, 송길윤이 2위, 최윤칠이 3위를 차지하여 마라톤에서 세계적인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 뒤 1952년 제15회 헬싱키올림픽에서 최윤칠이 마라톤에서 4위를 하였고, 1954년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최윤칠이 1,500m달리기에서, 최충식이 1만m달리기에서 각각 우승하였다.
그러나 올림픽경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리 나라 육상은 마라톤을 제외하고는 매우 부진한 실정이다. 매년 개최되고 있는 전국체육대회를 비롯한 육상선수권대회와 국제친선교환경기 등에서 계속적인 기록갱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세계의 기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에서 우상혁이 2m 35로 2위를 차지하여 한국 육상의 미래를 밝게 해주었다.
육상은 우리 인간의 모든 기능을 스포츠화한 가장 오래된 경기다. 더구나 육상은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 얼마나 멀리 또 높이 뛰는가? 얼마나 멀리던지는가? 속도, 순발력, 힘, 지구력 등 인간의 모든 기능, 능력을 재고 서로 겨루는 것이 육상이다.
그래서 상대도 있고 기록도 있지만 한계에 도전하기에 육상은 던지기와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며, 인간의 기본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에 어느 스포츠보다 기본적이고 원초적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대 올림픽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올림픽의 중심 경기로 인식되어 있다.
육상은 크게 달리기, 뜀뛰기(도약), 던지기(투척)로 나눌 수 있으며, 유일한 단체종목인 계주(릴레이)와 여러 종목을 함께 하는 혼성경기로 남자는 10종, 여자는 7종으로 한다. 도로경기는 경보와 마라톤이 있으나 경보는 트랙에서도 실시한다. 1896년 제1회 올림픽대회에서 12개 종목의 남자 육상이 오늘날 이렇게 늘어난 것이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에서는 모두 42개 종목에 걸쳐 실시되었다. 달리기 14개, 허들 5개, 경보 2개, 계주(릴레이) 4개, 마라톤 2개, 높이뛰기 2개, 멀리뛰기 2개, 세단뛰기 1개, 장대높이뛰기 1개, 포환던지기 2개, 원반던지기 2개, 해머던지기 1개 창던지기 2개, 10종경기 1개, 7종경기 1개로 모두 42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었다.
그 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43개 종목으로 남자가 24종목, 여자가 19종목, 그리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44개 종목으로 늘어났다. 신체적 구조와 체력적 요소로 인하여 남자만하던 종목을 여자가 하기 때문에 종목의 수가 늘어나는 추세이며, 얼마가지 않아 남 · 여 종목이 동일해 질 것으로 본다.
달리기는 모든 사람이 어느 때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기술이지만 개인의 신체구조와 힘, 유연성, 자세 등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그 역량은 크게 달라진다.
단거리 달리기에서부터 장거리 달리기에 이르기까지 달리는 운동의 힘의 합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즉, 내부적으로는 근육의 점성과 근막, 힘줄의 긴장에서 오는 저항을 극복할 뿐 아니라 반작용으로 인한 근육의 힘과 외부적인 중력, 공기저항, 발이 닿은 지면에 작용된 힘 등 종합적으로 연합되어 나타나게 된다.
달리기 종목은 100m, 200m, 400m, 800m, 1,500m, 5,000m, 1만m가 있으며, 특히 허들종목은 여자 100mH, 400mH, 남자 110mH, 400mH로 하고, 계주(Relay)는 400m(4×100m)와 1600m(4×400m)가 있으며, 3,000m(SC)장애물 경기도 있다.
이 중 100m, 200m, 400m달리기와 허들과 계주를 포함하여 단거리경기라 하며, 중거리경기는 800m와 1,500m, 장거리경기는 3,000mSC, 5,000m, 1만m달리기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단거리 달리기는 선천적인 체력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고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는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훈련으로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입증되고 있기도 하다.
100m달리기는 직선코스를 단숨에 “폭발적인 힘과 최대한의 속도로 전구간을 달리는 것이므로 폭발적인 힘으로 분출하는 스타트가 가장 중요하며, 출발부터 25∼30m까지의 스타트대시와 가속도 25∼30m에서 80m까지의 중간전력주, 80m부터 결승지점까지의 라스트스퍼트로 나누어 전략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허들경기는 1896년 제1회 올림픽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전에도 허들경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1820년대 영국 이튼학교에서 허들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1830년 경에도 허들경기가 있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알 수 없다.
1864년 영국의 다니엘이라는 선수가 120야드(약 110m)허들에서 17초45로 달렸다는 최초의 기록이 있다. 당시만 해도 달리기보다는 뛰어넘는데 더 신경을 썼지만 이후 계속 경기를 가지면서 도약의 기술도 발전했고 기록도 향상되었다.
그 결과 1895년 클리츠나인이라는 선수는 15초대로 주파했다. 허들은 달리기도 하지만 뛰어넘기도 한다. 경주와 도약을 같이 하는 종목인 셈이다.
일정한 거리 중간 중간에 장애물을 놓고 그것을 넘으면서 달리는 경기가 허들경주다. 그래서 도약의 성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일정한 거리를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가 더욱 중요하기에 허들은 트랙에 포함시킨다.
장애물 경주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올림픽경기의 육상에는 남자 110m허들, 400m허들, 3,000m장애물이 있고, 여자는 100m허들, 400m허들이 있다. 3,000mSC장애물은 스티플 체이스(Steeplechase)라고 한다. 근대 육상의 발생은 경마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장애물 경주는 경마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1850년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생들이 근처 농장에서 2마일 코스의 장애물 경마경기를 했다.
돌담을 넘고 내를 건너고 물웅덩이를 지나 뾰족탑이 있는 교회까지 말을 달리는 경기였다. 이때 한 선수가 말에서 떨어졌다. 그는 화가 난 끝에 말을 타지 않고 장애물 경주를 하자고 제안했다.
다음날 그 선수는 장애물 경주에서 우승했다. 이것이 3,000mSC의 발생설이다. 교회의 뾰족탑을 영어로 스티플이라하고 체이스란 추적한다, 쫓아간다는 뜻이다. 스티플 체이스라는 용어를 그래서 장애물경주에 쓰는 것이다. 또 2마일은 3,000m가 조금 넘는 거리다.
육상에서 유일한 단체종목인 계주는 1912년에 처음으로 올림픽에 채택되었다. 4명의 주자가 일정한 거리를 나누어 이어 달리는 계주에는 400m(4×100m),와 1,600m계주(4×400m)만이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되어 있다. 이 밖에도 4×200m, 4×800m, 4×1,500m 등의 계주가 있지만 이들은 세계기록으로 공인 받지 못한다. 배턴은 길이 28∼30cm, 무게 1.4kg의 알루미늄이나 합금으로 만드는데 눈에 잘 띄도록 칠한다.
배턴을 주고받으며 이어 달리는 계주는 4명의 선수들이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 배턴을 떨어트리거나 주고받는 것이 매끄럽지 못하면 그만큼 늦어지게 된다. 또 주의할 것은 배턴을 주고받는 구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구역은 20m로 제한되어 있는데 그 앞 10m는 가속을 위한 지역으로 쓸 수 있다.
선수들은 반드시 자기 레인만을 달려야 한다. 배턴을 주고받는 선수가 얼마나 어떻게 속도를 함께 유지하느냐가 바로 계주의 생명이다. 배턴을 주고받는 요령은 받는 손바닥이 땅을 향하거나 하늘쪽을 향하게 해 받거나 한다.
특히 400mR에서 배턴의 인계는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4명의 선수가 다 잘 뛴다 해도 배턴인계에 잘못이 있으면 기록이 늦거나 실격 당하게 된다. 배턴을 넘겨 준 선수는 다른 선수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자기 레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경보경기는 고대올림픽에서도 주요한 경기종목이었다. 경보는 5㎞, 10㎞, 20㎞, 30㎞, 50㎞ 등이 있으며 그 종목 수는 매우 많다.
그러나 올림픽과 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남자 20㎞, 50㎞, 여자 10㎞ 경보를 도로에서 실시한다. 경보는 한쪽의 발이 항상 지면에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전진하여 빨리 골인점에 도달하는 경기이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전진한 발은 뒷발을 지면에서 떼기 전에 지면에 닿아 있어야 하며, 몸을 떠받치는 다리는 신체를 수직으로 세운 자세에서 적어도 한순간은 곧게 펴져 무릎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
이 경기는 마라톤과 비슷하여 유기적인 전신의 지구력이 요구되며, 특히 많이 사용되고 있는 허리 아랫 부분의 근육과 유연성이 발달되어야 한다.
경기 중에는 동체를 수직에 가깝도록 곧게 세우고, 허리는 자연스럽고 크게 회전시키며, 다리나 팔의 동작은 근군에 힘이 들어가 긴장되지 않도록 팔을 앞뒤로 힘차게 흔들고, 다리는 보폭을 넓히면서 신체 앞쪽으로 기울여 나가는 것이 요령이다.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멀리뛰기, 세단뛰기의 4종목은 모두 탄력을 요하는 경기이다. 굳이 말한다면 봉고도(장대높이뛰기) 만은 탄력과 동시에 팔의 억셈이 중시된다. 공통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체력의 요소로서의 순발력이나 스피드, 게다가 리듬, 밸런스 등의 조정력 및 개성적인 기술이 요구되는 것이다.
투창, 투원반, 투포환, 투해머 등의 투척경기는 몸집이 큰 사람이 유리하다. 그러나 기록의 진보와 더불어 다리힘(순발력)과 스피드 및 그러한 기술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인식 되어있다. 투해머, 투창 등에서 체격이 작은 일본인이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 이를 실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개의 다른 종목의 경기를 펼쳐 종합 점수로 승패를 가리는 혼성경기는 이미 고대올림픽 때부터 있었다. 그때는 5종경기였다. 종목을 보면 도약(주로 추를 들고 하는 멀리뛰기, 시대에 따라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도 있었다) · 원반던지기 · 창던지기는 필수였고, 레스링과 달리기가 경우에 따라 빠지기도 했다. 이것도 후에는 멀리뛰기, 200m달리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1,500m달리기로 종목이 바뀌었다.
인간의 신체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 체력과 기능면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 운동으로 5종경기는 당시 중요시되었다. 혼성경기에는 10종, 7종, 5종, 3종경기 등이 있다. 올림픽대회에서는 남자 10종, 여자 7종경기가 정식종목으로 되어 있다.
마라톤의 기원은 490년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의 전투에서 비롯된다. 아테네 동북쪽에 위치한 마라톤 해안에 페르시아군이 상륙하고 마라톤 들판에서 아테네의 명장 밀리티아데스(Militiades)가 이를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 승전을 알리는데 필립피데스(Philippides)는 마라톤 벌판에서 아테네까지 약 40km의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가 “우리가 승리했다. 아테네 시민이여 기뻐하라.”라는 외침을 남기고 죽고 말았다.
근대올림픽 부활 당시 소르본대학의 언어학자 이셀 브레얼교수가 이러한 고사(故事)를 쿠베르탱 남작에게 말한데서 마라톤은 올림픽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었고,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인 아테네대회 때부터 마라톤경주가 실시되었다.
필립피데스가 달린 거리는 뒷날 실측해보니 36.75㎞였으나 올림픽 개최지의 형편에 따라 경주거리가 40㎞를 전후로 해서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1942년 제8회 파리올림픽대회의 코스인 42.195㎞를 정식거리로 채택하게 되었다.
이처럼 마라톤경주는 근대올림픽과 함께 성장, 발전해 왔다. 마라톤은 42.195㎞의 장거리를 달리는 경기로서 우수한 심폐기능과 강인한 각근력이 필요하며, 체온의 상승 및 심리적 피로 등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고도로 요구된다. 따라서 지구력과 더불어 페이스(pace)의 배분, 피치(pitch)주법의 터득이 경기성공의 관건이 된다.
이러한 마라톤경주는 근대 올림픽의 창설과 함께 시작되어 지금은 올림픽대회 가운데 최고의 인기종목으로서 ‘올림픽경기의 꽃’이라 불린다. 마라톤경주는 교통량 · 경사로 · 노면상태 등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여 공인된 도로에서 실시되며 출발점과 결승점은 경기장 안에 두는 것이 보통이다.
경주코스는 편도 · 왕복 · 순환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편도코스는 출발점과 결승점이 다른 외길코스이며, 왕복코스는 출발점과 결승점이 같고 반환점을 돌아 같은 길을 왕복하는 코스이다. 순환코스는 출발점과 결승점은 같으나 순환도로를 돌 듯이 갈 때와 올 때의 길이 다른 코스를 말한다.
경기를 신청할 때는 경기자가 경주 30일 전 이내에 의사의 건강진단서를 제출하여 경주에 참가해도 지장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나 요즘은 필요로 하지 않는 대회가 많다. 경주자는 다른 육상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단정한 복장을 갖추어야 하지만 맨발이 허용되는 유일한 육상경기이다.
모든 경주자는 프로그램에 기재된 번호표를 등과 가슴에 붙인다. 경기 도중의 음식물 섭취는 주최측이 제공 또는 승인한 것 외에는 이용할 수 없으며, 희망하는 음식물은 주최측의 승인을 얻어 지정된 장소에서 이용할 수 있다.
주최자가 마련한 공동의 음식물은 제너럴 테이블(general table)에서, 경기자가 준비한 음식물은 스페셜 테이블(special table)에서 공급받게 되고, 주최자는 음식물공급소의 중간 지점에 물만 공급하는 스폰지 포인트(sponge point)를 마련한다.
기록의 변천으로 봐서 달리기종목 중에서도 특히 단거리경주일수록 그 기록의 정체가 뚜렷하다. 그 예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똑같다.
100m의 기록은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의 부르크(Burke,T.)가 12초로 우승한 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미국의 오웬스(Owens,J.)가 10초 2를 기록하고, 1956년에 10초 1의 기록으로 단축하는데에는 20년의 시간이 걸렸다.
1968년에는 인간의 속도한계라고 하는 10초대를 깨뜨렸으며, 1987년 세계기록은 미국의 스미스(Smith,C.)가 세운 9초 93이며, 1999년 세계기록은 아테네 국제육상대회에서 미국의 모리스 그린(Maurice Greene)이 세운 9초 79이다. 현재 세계기록은 2009년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사인 볼트가 세운 9초 58이다.
여자 100m는 1928년 제9회 암스트레담올림픽에서 처음 채택되어 미국의 로빈슨(Robinson,E.)이 12초 2를 기록한 뒤, 1960년 제17회 로마올림픽에서 루돌프(Rudolph,W.)가 11초를 기록하였으며, 미국의 애시퍼드(Ashford,E.)가 10초 76의 기록을 세웠으며, 현재 세계신기록은 1988년 인디아나 폴리스에서 있었던 미국의 조이너(Joyner,G.)가 세운 10초 49이다.
우리나라는 1939년 일본 고시원[甲子園]에서 열린 육상경기대회에서 김유택이 10초 5로 우승한 이래 뚜렷한 기술향상을 보이지 않았으며, 1979년 멕시코시티에서 서말구(徐末九)가 세운 10초 34가 최고의 기록이다. 여자는 1986년에 박미선이 11초 70으로 한국기록을 세웠으나, 그 뒤 1994년 이영숙의 11초 49가 한국신기록이다.
200m 달리기는 100m는 곡선주로이고 나머지 100m는 직선주로이다. 기본적인 요인은 100m 때와 같으나, 곡선주에서 직선주로 바꾸어 달려야 하므로 스트라이드를 너무 크게 벌리지 않고, 곡선주로의 안쪽으로 몸을 기울이기 위해 바깥쪽으로 강하게 킥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200m의 일반적인 주법은 출발에서 25∼30m까지는 스타트대시와 가속도, 25∼30m에서 80∼85m까지는 중간전력질주, 80∼85m에서와 100∼105m에서 180m까지는 중간전력질주, 180m에서 결승점까지는 라스트스퍼트를 하여야 한다.
200m는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부터 채택되어 22초 2의 기록이 세워진 뒤 1936년 오웬스가 20초 7을 기록하였고 1956년 20초의 벽이 깨졌으며, 1979년에 이탈리아의 메네아(Memmea,P.)가 19초 72를 기록했으나, 현재 세계신기록은 1996년 미국의 마이클 존슨(Michael Johnson)이 세운 19초 32이다.
여자는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서부터 채택되어 24초 4가 기록되었고, 현재 세계신기록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에서 미국의 조이너(Joyner,G.)가 세운 21초 34이다.
우리나라 신기록은 1986년 장재근이 자카르트에서 수립한 20초 41이고, 여자는 1986년 박미선이 수립한 23초 80이다. 한편 장재근은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와 1986년 서울아시아대회 200m달리기에서 2년 연속 금메달을 차지한 바 있다.
400m달리기는 생리학적으로 볼 때 근육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 안에는 도달할 수 없는 거리이다. 따라서, 질주도중에 근육의 활동을 완화하여주는 것이 필요하므로 전 거리에 걸쳐 비교적 균일한 힘을 배분하여야 하고 긴장이 적은 여유있는 주법에 의한 스피드가 기술의 요점이 된다.
1896년 제1회 올림픽에서부터 채택되어 54초 2가 기록되었으며, 1900년 49초 4로 갱신된 뒤 1968년 제19회 멕시코올림픽에서 미국의 에번스(Evans,L.)가 43초 8을 기록하였고 현재 세계기록은 1988년 미국의 해리 레이놀즈(Harry Reynolds)가 세운 43초 29를 고수하고 있다.
여자는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채택되어 52초 F가 기록되었으며, 현재 세계기록은 1985년 동독의 코흐(Koch,M.)가 47초 60이다.
우리나라는 1941년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백재정이 50초 F로 일본의 최고기록을 세운 뒤 1975년에 구본칠이 47초 29를 수립한데 이어, 1987년 윤남한이 47초 28로 한국기록을 세웠으나 현재는 1994년 손주일이 세운 45초 37이 한국신기록이다.
여자는 1975년에 김경숙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56초 24를 기록한 뒤 1987년에 최은주가 55초 08로 신기록을 수립하였고, 현재는 1990년 그랑프리대회에서 박종임이 세운 54초 60이 한국기록이다.
중장거리경기는 1926년을 전후로 새로운 트레이닝방법이 채택되면서 기록이 크게 향상되었다. 즉 인터벌과 레피티션(Repetition) 트레이닝방법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지구력과 순발력을 동시에 발달시키는 것이다. 중장거리달리기는 속도와 지구력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동시에 에너지를 보존하여야 한다.
출발은 선 자세로 출발하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처음 20∼30m를 스프린트하여야 한다. 또한, 격렬한 선두다툼으로 라스트스퍼트에서의 질주 등 쫓고 쫓기면서 최후의 골인지점으로 돌진해 가는 것이 중장거리달리기의 매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빠른 속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자신의 체력에 맞게 보폭과 빈도를 줄이면서 에너지를 보존하여야 한다.
800m달리기는 빠른 속도와 지구력이 필요하며, 생리적으로 많은 산소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활동에 의하여 발생하는 젖산의 처리능력이 높아야 한다. 전 구간에서의 구성과 기술로는 스타트 · 중간질주 · 라스트스퍼트 · 피니시 · 페이스배분 등이 요구된다.
경기는 1896년 제1회 올림픽에서 2분 11초가 기록된 뒤 계속적인 기록향상으로 영국의 코(Coe,S.)가 1분 41초 73을 기록하였고, 현재 세계신기록은 1997년 덴마크의 월슨 킵케터(Wilson Kipketer)가 세운 1분 41초 11이다. 우리나라는 1982년 김복주(金福柱)가 1분47초 55로 신기록을 세웠으며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800m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바 있다.
그 후 1987년 류태경은 1분 46초 93으로 한국신기록을 세웠으며, 1990년 북경아시아경기대회에서 김봉유가 800m에서 1분 49초 48로 우승하기도 했다.
1994년 이진일은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또 한번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현재 한국 신기록과 아시아 신기록은 1994년 이진일의 1분 44초 14이다. 여자는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임춘애의 2분 05초 72가 한국기록이었으나, 현재는 1987년 싱가폴에서 최세범이 세운 2분 05초 11이다.
1,500m달리기는 800m와 비교하여 출발에서부터 오픈코스로 달려야 하는 것이 다르며, 출발 후에는 직선코스로 달려야 하므로 자신이 편리한 위치를 확보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1,500m는 800m보다 지구력과 힘의 배분이 더 필요하며, 그 밖의 것은 800m와 대부분 같다.
따라서, 1,500m도 800m와 같은 트레이닝방법으로 지구력과 속도가 향상되어 상당한 기록단축을 거두고 있으며, 1985년 모로코의 세드(Said,A.)가 3분 29초 45의 기록을 세웠고, 현재의 세계신기록은 1998년 모로코의 엘 게루즈(El Guerouj)가 세운 3분 26초 00이다.
여자는 1980년에 소련의 카잔키나가 3분 52초 47의 기록을 세웠으나, 현재 세계신기록은 1993년 중국의 규 윤샤(Qu Yunxia)가 세운 3분 50초 46이다.
우리나라는 1986년 류태경이 3분 44초 51을 기록하였고, 현재는 1993년 제10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김순형이 세운 3분 38초 60이 한국신기록이다. 여자는 1986년 임춘애가 4분 19초 85를 기록하였으나, 1992년 이미경이 4분 04초 18로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트랙경기 중 가장 긴 장거리 5,000m달리기, 1만m달리기는 전신지구력이 크게 요구될 뿐만 아니라 에너지의 보존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체력적인 요소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며, 트레이닝도 기술적인 것보다는 체력적인 것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피드화되어 에너지소비와 더욱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됨에 따라 질주 폼이나 올바른 레이스배분 등의 기술적인 면도 중요시되고 있다.
또한 5,000m, 1만m는 기본적인 폼의 흐름은 스트라이드주법으로 시작하여 피치주법으로 옮겨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장거리의 스피드화와 함께 에너지소비를 크게 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부담 없는 형으로 스트라이드를 발전시키는 것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장거리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트레이닝방법이 개발되어 계속적으로 기록이 향상되고 있으며, 1984년 모로코의 아이타가 13분 04초의 신기록을 세웠으나 현재 세계신기록은 1998년 에티오피아의 게브리세라시(Gebrselassie)가 세운 12분 39초 36이고, 1만m도 게브리세라시가 26분 22초 75의 세계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34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10회 극동육상선수권대회에서 유장춘이 10,000m에서 32분 45초 6으로 우승한 뒤 1954년 제1회 마닐라아시아경기대회에서 최윤칠이 5,000m에서 2위, 최충식이 10,000m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그 뒤 1958년 제2회 동경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승철이 5,000m에서 2위를 차지하였으며, 1986년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김종윤이 5,000m에서 금메달을 10,000m에서 은메달은 차지하였다.
여자는 임춘애가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800m, 1,500m, 3,000m에서 3관왕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3,000m는 하지 않으며 5,000m로 실시하고 있다.
현재 5,000m경기의 한국 최고기록은 1997년 전국체육대회에서 권은주가 세운 16분 07초이며, 1만m는 1994년도 정영임이 세운 33분 24초 78이다. 남자 5,000m의 한국신기록은 1987년 한국육상그랑프리대회에서 백승도가 세운 13분 50초 35이다. 10,000m경기의 한국신기록은 1986년 김종윤이 세운 28분 30초 54로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국제 경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유럽선수권대회: 1934년 이탈리아 트린에서 제1회가 열렸으며 4년마다 올림픽 중간에 유럽의 각 도시에서 행해지고 있다.
② 범미국경기대회: ‘판아메리칸 게임즈’라고도 한다. 북미 · 중미 · 남미 여러 나라가 참가하고 있으며 4년마다 열리며 1967년 제5회 대회는 캐나다에서 열렸다.
③ 보스톤마라톤: 매년 4월 중순 미국 보스톤에서 열리며 1996년 100회로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회다. 이 코스에는 결승점 약 10㎞ 지점에 유명한 언덕이 있는데 ‘하트브레이킹 힐(Heart breaking hill)’이라고 한다.
④ 플리테크닉 헬리어즈 마라톤: ‘원저마라톤’이라고도 하며 런던교외의 원저궁을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1999년 제79회를 맞이하였다.
⑤ 미 · 소대항경기대회: 해마다 미국과 소련에서 교대로 열려 1966년 제8회 때 월남문제로 소련측이 참가취소하게되자 열리지 않고 있다. 대립하는 동서진영의 거인끼리의 대전이라는 뜻에서 가장 주목되는 경기였다.
⑥ 태평양연안 5개국대항경기대회: 미국 · 캐나다 · 오스트레일리아 · 뉴질랜드 · 일본 등 태평양연안 5개국대항경기대회는 제1회는 1969년 9월에 도쿄에서 열렸다. 여비, 체재비를 포함하여 일체경비를 주최측이 맡기로 되어있으며, 4년마다 올림픽 다음해에 열린다.
⑦ 아사이국제마라톤: 일본 아사이(朝日)신문사가 세계 일류 마라톤선수를 초대하여 전 일본우수선수가 망라하여 참가하는 세계적인 레이스인데, 1966년부터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인정하는 국제마라톤선수권대회이며 새로운 대회로 치르고 있다.
⑧ 서울국제여자역전경주대회: 세계 20여개 국의 참가로 매년 서울에서 열리며 KBS공동주최와 일본의 MBS가 특별 후원한다.
⑨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매 2년마다 열리며 2011년 대구에서 개최된 바 있다.
⑩ 지바국제역전경주대회: 일본 지바에서 매년 개최되며 우리나라 선수도 매년 참가한다.
국내경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동아마라톤대회: 1931년에 동아일보사 주최로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계속되어 오다가 제7회와 제8회 그리고 제12회와 제24회는 동아일보의 정간(停刊)으로 중지되었으며, 1954년인 25회부터 다시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단축마라톤이었으나 1964년(제35회)부터 풀코스대회가 되었다. 1970년(제41회) 동아일보 50주년기념으로 국제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②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1947년 제1회를 열었으며 그 이후 매년 개최하고 있는 대회이다. 매년 5월 말 전후에 실시한다.
③ 전국육상선수권대회(전국남녀육상경기대회): 매년 실시하며 1999년은 제53회가 된다.
④ 경호역전경주대회: 1971년 제1회가 열렸으며 목포에서 서울 삼각지까지 504.05㎞를 달리는 시 · 도대항전이었으나 1996년 중지되었다.
⑤ 경부역전경주대회: 1955년 한국일보 주최로 제1회가 열렸으며 1999년으로 제45회가 된다. 처음에는 육군 특무부대, 공군이 중심이 되고 일반팀은 2, 3개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후 많은 선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시 · 도대항전이다.
⑥ 코오롱고교구간마라톤대회: 코오롱과 KBS가 공동주최하며, 1999년 제15회를 맞으며 각 시 · 도별 육상연맹에 추천을 받아 남 · 여 단일학교로 참가하며, 체재비는 코오롱에서 부담한다.
⑦ KBS배전국육상경기대회: 고등학교 대회로 1999년 제27회로 한 · 중 · 일 주니어대회 최종선발전이기도 하다.
⑧ 교보생명컵 전국초등학교 시 · 도대항육상경기대회: 교보생명 공동주최로 열리는 꿈나무를 육성하고 있다.
⑨ 문화관광부장관기 전국시 · 도대항육상경기대회: 1999년 제20회이며, 고등학교 대회로 시 · 도대항육상경기대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