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9장). 1989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윤돈이 그 아들 창세(昌世)에게 필집(筆執)하게 하였고, 유씨본가(柳氏本家)와 그 맏사위의 집에는 부인만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두 3통을 만들어 세 가정에서 나누어 가졌으나 두 집은 이 문서가 유실되고 이것만이 남아 있음을 뒤의 발문(跋文)에서 알 수 있다.
윤돈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충청도 노성(魯城:지금의 논산) 땅에 처음으로 거주하게 되어 파평윤씨 노성종파(魯城宗派)를 이룬 중시조(中始祖)로 전해져 온다. 분재기의 주요 내용은 조선시대에 출가한 딸에게도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어 준 것이며, 당시의 사회 모습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문서에 나타난 분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녀서(一女婿) 한여헌처(韓汝獻妻) 유씨 봉사조합(奉祀條合) 207 두락(斗落)과 노비, 이녀서(二女婿) 윤돈처 유씨 124 두락과 노비, 삼남(三男) 고(故) 유서봉처(柳瑞鳳妻) 이씨(李氏) 179 두락과 노비, 필집 윤창세(尹昌世)”
삼남 유서봉이 아들이 없어 유씨의 제사는 맏사위 한여헌가에서 외손봉사토록, 봉사조로 재산을 따로 분배했으나 한여헌가에도 봉사손이 무후가 되니 둘째사위 윤돈가로 봉사손 재산이 이관되어 지금까지 외손봉사를 계속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