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정헌(靖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66년(세조 12)
사망 연도
1555년(명종 10)
본관
파평(坡平, 지금의 경기도 파주)
주요 관직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참판 윤보(尹甫)이며, 중종 비(妃)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죄인 윤필상(尹弼商)의 족친이라 하여 유배되었으며, 1506년의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이듬해 딸이 숙원(淑媛)에서 왕비로 책봉되어,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에 봉해지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가 되었다. 1527년(중종 22) 동궁 내에 저주하는 물건이 나온 것을 우의정 심정(沈貞)에게 알려 조사하게 하였고, 그 뒤 아들 윤임(尹任)과 함께 세자(후일의 인종)의 보호에 진력하면서 윤원형(尹元衡) 등의 소윤과 대립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로 아들 윤임은 사사(賜死)되었으나, 80세의 노령에다 선후(先后)의 아버지이므로 특별히 용인에 부처되었다가 1551년(명종 6)에 풀려났다. 사후에 복관되었으며,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한국계행보(韓國系行譜)』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