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준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개항기 때, 기기국총판, 사어직각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석정(石渟)
  • 시호충정(忠貞)
  • 치명(稚命)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파평(坡平)
  • 사망 연도1884년(고종 21) 12월 4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39년(헌종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원유한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개항기 때, 기기국총판, 사어직각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치명(稚命), 호는 석정(石渟). 판서 윤교성(尹敎成)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3년(고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었다.1881년 김윤식(金允植)과 함께 69명의 영선사(領選使)가 청나라에 파견되었을 때 종사관(從事官)으로서 따라갔다. 그 뒤 영선사 파견 결과로 1884년 근대 병기공장인 기기국(機器局)이 설치되자 기기국총판(機器局總辦)에 임명되었다. 1882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어직각(司禦直閣) 등을 역임하였다.

이 해에 임오군란이 일어나 군민들이 중전 민씨를 찾아내려 할 때 민씨를 자신의 집에 보호한 뒤 여주를 거쳐 충주로 피신시켰다. 민씨의 도피·피신 중 측근에서 활약하면서 민비의 밀사로 입궁, 대원군의 제거를 위해 청나라에 청원할 것을 건의하였다.

임오군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민씨를 중심으로 한 수구파와 개량개화파들이 결합, 관제개혁이 진행되어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이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으로 개편될 때 농상사협판(農商司協辦)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군제개혁도 아울러 진행되어 신건친군영(新建親軍營)이 조직되고 좌영·우영으로 나뉘어 편제되자 우영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1884년에 기존 2영에 전영(前營)·후영이 증설되어 4군영제로 확대되면서 후영사로 임명되었다.

중앙에서 개화당과 수구당의 대립이 한층 격화된 그 해 12월 4일, 우정국 낙성식을 기해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켜 수구파를 살해할 때 부빈(部賓)으로 초청되었다.

그 날 밤 숙직인 관계로 참석하지 않았으나, 고종이 경우궁으로 행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가 독립당의 장사패인 윤경순(尹景純)에게 살해되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편서로 『형향록(馨香錄)』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 『고종기사(高宗紀事)』

  • - 『동궁일기(東宮日記)』

  • - 『갑신일록(甲申日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