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참찬, 호조판서,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33년에 군기감판사(軍器監判事)를 거쳐서 동부승지·우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좌승지를 역임하였고, 1441년에 충청도도관찰사, 1444년에 공조참판, 1445년에 예문관제학, 1446년에 판한성부사·지중추원사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에 성절사(聖節使)로서 주문사(奏聞使) 김하(金何)와 함께 명나라에 갔다가 다음해에 돌아왔다. 명나라에서 돌아온 뒤 호조판서·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는 각종 방물(方物)을 가지고 사은사로 북경에 다녀왔고, 그 해 우참찬이 되었다가 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호조판서가 되었다.
1453년 늙었음을 이유로 사직하려고 하였으나 다시 중추원사가 되었다. 이견기가 죽자 나라에서는 2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관곽(棺槨)과 종이 100권을 부의(賻儀)로 내렸다. 시호는 안성(安成)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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