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증 영의정 이오(李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흥군(韓興君) 이덕연(李德演)이다. 아버지는 지평 이성원(李性源)이며, 어머니는 별제 최침(崔琛)의 딸이다.
현종 초에 재행(才行)으로 선발되어 광릉참봉(光陵參奉)으로 출사한 이후, 사옹원봉사·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을 거쳐 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에 이어 사헌부감찰이 되었는데, 당로자(當路者: 요직에 있는 사람)로부터 업신여김을 받고 끝내는 사직하였다.
얼마 뒤 지례현감에 임명되어 조세를 적게 거두고 쓰임새를 줄여 포흠(逋欠) 500석을 견감(蠲減)하여 백성들로부터 거두지 않았다.
1670년(현종 11)에 다시 감찰이 되었고 그 해에 토산현감이 되었다. 현에 산지가 많고 평야가 좁으며 주민은 적고 여러 군의 둔전(屯田)만 고을에 가득하여 부역이 잦고 세금이 무거워 백성들이 견디지를 못하므로, 이에 둔전을 파해줄 것을 상신하고 몸소 소박한 생활을 해서 백성들을 보호하다가 재직중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