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항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상의원주부, 사헌부감찰, 토산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 사망 연도1673년(현종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사헌부감찰|토산현감
  • 출생 연도1609년(광해군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호균 (상지실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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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상의원주부, 사헌부감찰, 토산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증 영의정 이오(李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흥군(韓興君) 이덕연(李德演)이다. 아버지는 지평 이성원(李性源)이며, 어머니는 별제 최침(崔琛)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현종 초에 재행(才行)으로 선발되어 광릉참봉(光陵參奉)으로 출사한 이후, 사옹원봉사·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을 거쳐 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에 이어 사헌부감찰이 되었는데, 당로자(當路者: 요직에 있는 사람)로부터 업신여김을 받고 끝내는 사직하였다.

얼마 뒤 지례현감에 임명되어 조세를 적게 거두고 쓰임새를 줄여 포흠(逋欠) 500석을 견감(蠲減)하여 백성들로부터 거두지 않았다.

1670년(현종 11)에 다시 감찰이 되었고 그 해에 토산현감이 되었다. 현에 산지가 많고 평야가 좁으며 주민은 적고 여러 군의 둔전(屯田)만 고을에 가득하여 부역이 잦고 세금이 무거워 백성들이 견디지를 못하므로, 이에 둔전을 파해줄 것을 상신하고 몸소 소박한 생활을 해서 백성들을 보호하다가 재직중에 죽었다.

참고문헌

  • - 『기언별집(記言別集)』

  • - 『한산이씨세보(韓山李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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