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후설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간원헌납, 예빈시정, 영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자허(子許)
인물/전통 인물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1673년(현종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간원헌납|예빈시정|영광군수
  • 출생 연도1615년(광해군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호균 (상지실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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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헌납, 예빈시정, 영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허(子許).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 성효관(成孝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간 성이문(成以文)이고, 아버지는 현령 성신구(成信耉)이며, 어머니는 유곤수(柳崑壽)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42년(인조 20)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51년(효종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가주서(假注書)·전적·함경도사를 거쳐 병조좌랑·사간원정언·경상도사를 지내고, 1656년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에 올라 홍주목사로 내려가 크게 치적을 쌓았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있을 때 전지(田地)의 매매는 반드시 관서를 거쳐야 하며 노비의 경우도 같이 하도록 건의하여 마침내 영구히 제도화되게 하였다. 그 뒤 안동부사를 거쳐 1665년(현종 6)에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예빈시정(禮賓寺正)·영광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사성으로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강계부사·의주부윤·우승지를 역임하였다.

1671년 수원부사로 나아가서는 부병(府兵)의 정원이 많고 호적에 있는 백성들이 계속 줄어들자 부병들 중 노약한 자를 가려내어 정예병들로 선발하게 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2년 후 파직되어 돌아와 곧 죽었으나 그 해에 관작이 복구되었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염헌집(恬軒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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