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수찬, 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희원(熙遠), 호는 명고(鳴皐).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8대손이며, 이경율(李景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감(李愖)이고, 아버지는 사인(舍人) 이진영(李晉英)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로 지중추부사 신식(申湜)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21년(광해군 13) 유학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24년(인조 2) 사정에 출사하였으며,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637년 지평(持平)·정언(正言)·장령(掌令), 1638년 수찬(修撰)·집의, 1639년 필선·사간 등을 지냈다. 간관으로 있으면서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주화파로서 척화파 김상헌(金尙憲) 등을 공격하는 데에 앞장섰다.
1641년 말 선천부사로 있을 때에 명나라 상선과 밀무역하다가 청나라에 발각되어 의주에 구금되었다. 청나라 장군 용골대(龍骨大)의 심문으로 처형을 받게 되자, 구명책으로 최명길(崔鳴吉)·이경여(李敬輿)·신익성(申翊聖)·이명한(李明漢) 등이 명나라와 밀통한다는 사실과 또 우리나라의 음사(陰事) 12조를 고하였다.
청나라 장군은 이계를 국가와 왕을 배신하는 자로 판단하고 우리나라에서 처단하도록 연락하였고,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 정석문(鄭錫文)을 보내어 1642년에 참수하였다. 문장과 시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소대기년(昭代紀年)』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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