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울산(蔚山). 초명은 이중오(李中吾). 자는 성응(聖應), 호는 죽오(竹塢). 울산 출신. 아버지는 이의창(李宜昌)이며,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이기(李頎)의 딸이다.
남용만(南龍萬)의 문하에서 수학, 이정규(李鼎揆)와 교유를 맺고 학문을 강마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91년에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뒤 봉상시참봉(奉常寺參奉), 성균관·교서관 박사, 성균관전적을 역임하였다.
1802년(순조 2) 후릉영(厚陵令)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병조좌랑을 거쳐 1819년에 사헌부지평에 이르렀다. 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양사재(養士齋)를 짓고 후진양성에 힘쓰면서 경학과 사학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죽오유집』 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