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남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백령첨사, 이산군수, 풍천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정숙(靜叔)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병자호란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680년(숙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백령첨사|이산군수|풍천부사
  • 출생 연도1598년(선조 3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호균 (상지실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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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백령첨사, 이산군수, 풍천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정숙(靜叔). 할아버지는 참찬 이몽량(李夢亮)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이며, 어머니는 감찰 오언후(吳彦厚)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어머니의 절행(節行)으로 정경세(鄭經世)가 경연(經筵)에서 천거하여 벼슬에 나갔다. 1631년에 북방 야인이 자주 침구하므로 자진출전하여 공을 세웠고,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왕을 호종하였으며, 예조판서라 가칭하여 청나라 진지에 왕래하기도 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홍원현감·영암군수를 거쳐 동지중추부사로 승진하였으나, 당시 평안·황해 양도가 호란으로 인하여 문란하여졌던 민정(民情)이 회복되지 않았고, 연행(燕行)의 요충지이며 청나라 사신들이 빈번히 왕래하는 곳이어서 많은 읍들이 피폐하였으므로,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1638년에 영원군수로 부임하였다.

그 뒤 양덕현감·수안군수를 거쳐, 1651년(효종 2)에 백령첨사·이산군수·풍천부사·신천군수·서흥부사를 지냈다. 그 뒤 1664년(현종 5)에는 장연부사·상원군수 등 관서지방의 외직을 역임하였다. 그 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러 정헌대부(正憲大夫)의 위계에 올랐다. 풍천부사에서 체임(遞任)할 때에는 오직 쌀 한 섬만을 싣고 귀향할 만큼 청백하였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청성집(靑城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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