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장령, 함경도관찰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계형(季馨)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721년(경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령(掌令)|함경도관찰사|대사간
  • 출생 연도1659년(효종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동익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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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함경도관찰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계형(季馨). 이택민(李澤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기선(李起先)이다. 아버지는 이몽석(李夢錫)이며, 어머니는 안응창(安應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95년(숙종 21) 진사로 절제(節製)에 일등하여 전시에 직부(直赴)되었으며, 그 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정언(正言)이 되었다. 1699년 지평(持平)에 올라 무과·소과(小科) 실시에 따른 문제점과 공정한 전주(銓注)의 처리를 건의하였다.

이어 문학·필선·장령(掌令)·헌납(獻納)·집의·사간·보덕 등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710년에는 기묘사화 때에 폐과된 현량과의 복과를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년 뒤 승지에 발탁되고, 황해·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하다가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곧 대사간이 되어 재직 중 죽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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