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 이완용과 이용구의 암살을 계획하였으며, 한성국민대회 13도대표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4년(고종 21)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평안북도 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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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 이완용과 이용구의 암살을 계획하였으며, 한성국민대회 13도대표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정주 출신, 1909년 평양의 박태은(朴泰殷) 집에서 이재명(李在明)·김정익(金貞益)·전태선(全泰善) 등과 함께 매국적당들을 처단하기로 결의하고 이완용·이용구(李容九)를 동시에 처단하기로 하였다.

이동수는 이재명·김병록(金丙錄) 등과 함께 이완용을, 김정익·조창호(趙昌鎬)는 이용구를 맡기로 하고 상경하였다. 그 해 12월 종현(鍾峴: 북달재) 천주교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이재명의 주동으로 자격(刺擊)하였다.

사건 직후 동지들은 거의 잡혔으나 자신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였고 궐석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언도받았다. 그 뒤 독립운동을 계속하여 1919년 4월에는 한성국민대회(漢城國民大會) 13도대표로 활동하였으며, 상해에 건너가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4년 이완용저격사건 이후 15년 만에 일본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독립운동사자료집』1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집필자
조동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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