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득신이 올린 상소문이 민심을 광혹하게 했다는 영의정 서명선(徐命善)의 탄핵으로, 1781년(정조 5)에 유배되었다가 4년 뒤 춘천부사로 부임하였다. 다음해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을 때, 상주목사가 승려를 동원해 화양동에 있는 만동묘(萬東廟)를 수리하자 관할자로서 지방 유생들로부터 책임을 추궁받기도 하였다.
1788년(정조 12) 대사헌이 되고, 다음 해 희천군수로 나가 치적을 쌓아, 암행어사의 보고로 정조로부터 말이 하사되기도 하였다. 1793년(정조 17) 형조판서가 되었을 때 수감중 병에 걸려 고생하는 전국의 죄수에게 약을 주어 치유시켰다.
2년 뒤 임금의 모후 혜경궁(惠慶宮: 敬懿王后)을 추존하는 경사가 있자 행부사직으로 가자(加資: 품계가 오름)의 은전을 받았다. 그 뒤 지의금부사·대사헌·이조판서·병조판서를 역임하고, 1797년(정조 21)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호남에 4만석을 풀어 기민(飢民)을 구제했으며, 이 지방의 사치를 엄단할 것을 상소하였다.
2년 뒤 한성부판윤이 되고 1801년(순조 1) 정조의 능을 조성하는 산릉제조(山陵提調)로서 공로가 있어 가자되었다. 그 뒤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02년(순조 2) 병조판서로 있다가 죽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