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중망(仲望). 할아버지는 이계통(李季通)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 이세응(李世應)이며, 어머니는 김미(金楣)의 딸이다.
1519년(중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고, 1524년(중종 1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를 비롯하여 정자·승정원박사를 거쳐, 부수찬에 이르렀다.
성격이 강직하고 효성이 지극하며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으로, 이조정랑 재임 시에는 사간원으로부터 무고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대사간 재임 시에는 동궁(東宮)에 불이 났는데, 윤원형(尹元衡)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여론이 분분하자, 임금의 총애가 한쪽으로 치우쳐 일어난 일이라는 소를 올려 윤원형 일파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문장 역시 뛰어나 1541년(중종 36) 동지사(冬至使) 허자(許磁)와 함께 진위사(進慰使)로서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545년(인종 1) 병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윤임(尹任)·유관(柳灌)과 연루되었다는 윤원형 일파로부터의 모함을 받아 곤장을 맞고 의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사사(賜死)되었으나 뒤에 복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