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관직의 발생 연혁은 나타나지 않으나 사복시가 고려말에 설치된 이래 잡직으로 안기(安驥)·이기(理驥)·마의(馬醫)·견마배(牽馬陪) 등이 있었다.『고려사』에는 나타나지 않고 조선 초기에 처음 언급된 것으로 보아 조선 건국을 전후로 한 시기에 설치된 것으로 생각된다.
1458년(세조 4)에 사복시제조가 이마의 고생을 아뢴 뒤 1년에 한번 주는 녹을 지난날에 두 번 주던 녹으로 개정하여줄 것을 요청하여 이를 성사시켰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458년 이전에는 성립된 것으로 생각되나『경국대전』에는 명문화되지 않은 것 같다. 세조 때는 정6품이었는데, 이때 도제조의 장계로 7품의 별체아(別遞兒)를 하나 더 준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 조선 후기에 오면『속대전』에 정원이 4인이고, 품계는 정6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대전통편』과 『대전회통』에 의하면 품계와 구성원에 차이를 두고 6품이 1인, 8품이 2인, 9품이 1인으로 모두 체아직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한성에 입번(立番)하여 장기간 머무르면서 사복시에서 기르는 말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