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각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암후유기」, 『신암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근휴(謹休)
신암(愼庵), 암후(巖后)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15년(순조 15)
사망 연도
1874년(고종 11)
본관
진보(眞寶)
출생지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암후유기」, 『신암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근휴(謹休), 호는 신암(愼庵)·암후(巖后). 아버지는 통덕랑 이휘운(李彙運)이며, 어머니는 전주유씨(全州柳氏)로 진사 유회문(柳晦文)의 딸이다. 외숙 유치명(柳致明)에게 글을 배웠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5년(고종 2) 직지사(直指使) 박규수(朴珪壽)의 추천으로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이 영리(榮利)의 뜻을 버리고 경전과 『주서절요(朱書節要)』를 깊이 연구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력하였다.

당시의 석학 이돈우(李敦禹)·강건(姜楗)·윤최식(尹最植) 등과 교의를 맺고 그들과 학문에 대한 많은 서신을 남겼다.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이황(李滉)·기대승(奇大升) 간에 있었던 사칠이기론(四七理氣論)을 연구, 발전시켰다.

또, 『퇴계전서(退溪全書)』 중에서 긴요한 종지(宗旨)만을 발췌하여 「계서약선(溪書約選)」을 편집하였고, 고증학에도 밝아 용학의목(庸學疑目)인 「암후유기(巖后類記)」를 남겼다. 저서로는 『신암문집(愼庵文集)』 10권 5책이 있다.

참고문헌

『신암문집(愼庵文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