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경기도관찰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지영천군사(知永川郡事)·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성균관대사성·좌사간·예조참의·경승부윤(敬承府尹)·충청도관찰사·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차례로 지냈다. 1421년(세종 3)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예조참판·경기도관찰사·공조판서·예조판서를 지냈다. 1425년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이조와 병조 판서를 지냈다.
1427년 좌빈객(左賓客)이 되어 세자를 가르쳤고, 그 뒤 의정부참찬 겸 대사헌·이조판서·예문관대제학을 역임하였다. 1429년 사은부사로 북경에 갔다가, 다음 해 돌아와서 의정부참찬이 된 뒤 성균관대사성·판한성부사·이조판서·예문관대제학을 지냈다. 1437년 예문관대제학 겸 판이조사(藝文館大提學兼判吏曹事)가 되니 판이조사를 겸한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뒤 우찬성 겸 판이조사·판의주목사·좌찬성을 역임하였다.
1440년 부인 이씨가 심한 질투로 종을 죽인 사건으로 파면되어 황해도 우봉현(牛峰縣)으로 쫓겨났다가, 방면되어 돌아오는 길에 개성부에서 70세로 죽었다. 글씨와 시문에 뛰어났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한산이씨세보(韓山李氏世譜)』
- 『필원잡기(筆苑雜記)』
- 『용재총화(慵齋叢話)』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해동잡록(海東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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