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현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이조참판, 나주목사, 경상도재상경차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근재(覲齋)
  • 사성(師聲)
인물/전통 인물
  • 본관재령(載寧)
  • 사망 연도1487년(성종 18)
  • 주요 관직이조참판|나주목사|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災傷敬差官)
  • 출생 연도1436년(세종 1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상기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근재집 / 근재실기 미디어 정보

근재집 / 근재실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참판, 나주목사, 경상도재상경차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사성(師聲), 호는 근재(覲齋). 아버지는 호조참판 이개지(李介智)이며, 어머니는 진주하씨(晉州河氏)로 하경리(河敬履)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56년(세조 2)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60년에는 춘당시(春塘試)에 을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주부를 거쳐, 1464년에는 수찬낭관(修撰郎官)으로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수하는 데 참여하였다. 그 뒤 이조정랑·예조참의·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맹현은 1475년(성종 6) 경회루를 중수하자는 논의가 있자, 백성들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때에 공사(公私)의 영선(營繕)은 일절 금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災傷敬差官)이 되어 여러 읍의 전적(田籍)을 살펴보고 전안(田案)에 모람(冒濫)과 결수(結數)의 착오가 많음을 지적하여 그 시정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뒤에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저술로는 유시(遺詩) 4수가 전한다.

참고문헌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보감(國朝寶鑑)』

  • - 『근재실기(覲齋實紀)』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