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양(平壤). 아버지는 조명초(趙明初)이며, 곡산부원군 연사종(延嗣宗)의 사위이다.
1431년(세종 13) 시직(侍直)으로 재직시 장인 연사종이 승정원에 문서를 보내어 구관(求官)하였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장(杖) 100의 처벌을 받았다. 1447년 겸판통례문사(兼判通禮門事)에 임명되었으나, 할머니 김씨의 음예(淫穢)를 이유로 관직이 신분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449년 첨지중추원사에 임용되었으나, 이듬해 우헌납 송처검(宋處儉)으로부터 역시 관직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탄핵을 받았다. 1451년(문종 1) 중추원부사에 임용되었으나, 다음달에 사직을 청하였고, 1455년(단종 3) 안주선위사로 파견되었다.
같은 해 빈청(賓廳)에서 혜빈양씨(惠嬪楊氏)·금성대군(錦城大君) 등의 역모에 동지중추원사로서 참여하였다 하여 광양에 유배되었다가 교사(絞死)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