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명(景明). 군수 민사용(閔思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랑 민여준(閔汝俊)이고, 아버지는 민근(閔根)이며, 어머니는 조경위(趙景暐)의 딸이다. 민설(閔樰)에게 입양되었다.
참군(參軍)으로 1651년(효종 2)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59년 병조정랑으로서 삼방낭청(三房郎廳)의 기주관(記注官)을 겸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이르렀다. 1660년(현종 1) 여성제(呂聖齊)와 함께 임금의 부름에 병으로 응하지 못하였음을 이유로 사퇴하고자 하였는데, 이때 장령(掌令) 성후설(成後卨)의 상소로 관직이 교체되었다.
같은 해 5월『효종실록(孝宗實錄)』 편찬을 위하여 실록청이 개설되었을 때 김수흥(金壽興)·김만기(金萬基) 등과 더불어 춘추관(春秋官)을 겸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12월 남원부사(南原府使)로서 유학(幼學) 이상고(李尙固), 전부사(前府使) 최일(崔逸) 등과 함께 의금부에서 진전(陳田) 지급과 관련되어 문초를 받기도 하였다. 1666년 8월 장령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정월까지 장령으로서 여러 차례 언론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