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순(子順), 호는 일암(一菴). 좌찬성 박열(朴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평시서직장(平市署直長) 박세정(朴世貞)이고, 아버지는 장단부사(長湍府使) 박옹(朴顒)이며, 어머니는 생원 최여집(崔汝楫)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591년 성균관 유생들을 이끌고 당시 무고를 당한 재상을 구해줄 것을 상소하였다. 160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승문원 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임용되었다.
이때에 박효남을 아끼는 자가 사원(史院)에 있으면서 힘써 천거하였으나, 그 주장한 바가 시론(時論)에 크게 어긋난 점이 있어 천거한 자는 파직당하고 박효남은 성환찰방(成歡察訪)이라는 외직으로 나아갔다. 이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전보되었다. 이때 크게 선정을 베풀어 현민들이 비를 세워 공덕을 기렸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9월 병조좌랑에 임용되었으며, 이후 호조·형조·공조의 정랑직을 역임하였다. 1610년 태천현감(泰川縣監)으로 나아갔으나 수로공사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파직당하였다. 그러나 태천현감 재직시에도 선정을 베풀어 이 지역의 현민들도 비를 세워 공덕을 기렸다고 한다. 성격은 외화내강(外和內剛: 겉으로는 부드러우나 마음속은 강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