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사수(士綬), 호는 위사(韋史). 신소(申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광손(申光遜)이고, 아버지는 교리 신재업(申在業)이며, 어머니는 좌참찬 김이탁(金履度)의 딸이다. 신재정(申在正)에게 입양되었다.
1848년(헌종 14) 5월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49년(철종 즉위년) 11월 오정수(吳正秀)·박규수(朴珪壽)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올랐으며, 이후 황해도암행어사·규장각직각·도청응교(都廳應敎) 등을 역임하였고, 1854년에는 순천부사로서 수재 피해수습에 진력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6월 성균관대사성으로 전보된 이후에는 홍문관부제학·이조참의·규장각직제학·이조참판·황해도관찰사·도총관·예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863년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1864년(고종 1) 김병학(金炳學)·강시영(姜時永) 등과 함께 실록교정청의 당상이 되었으며, 홍문관제학·예문관제학·대사헌·규장각제학·이조판서·예조판서·수원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1873년 1월 사은정사(謝恩正使)로 선임되었으나, 병으로 인하여 이근필(李根弼)과 교체되었다. 같은 해 2월 예문관제학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