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우부승지, 호조참판,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68년(현종 9) 다시 등용되어 태상시정(太常寺正)·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숙종 초기에는 사간이 되어 성학(聖學) 권장, 인재의 선발, 언로(言路) 개방, 선비 양성, 둔전제 폐지, 군정(軍政) 개혁 등을 역설하였다.
또 송나라 철종(哲宗)의 고사를 인용해 선조(先朝)에서 견책받은 신하들의 죄를 용서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 때 곽세건(郭世楗)이 서인을 일망타진하려는 소를 올리자, 곽세건의 죄를 다스리도록 청해 사림(士林)의 사기를 북돋우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의 집권 세력인 남인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어 양주의 장리(庄里)에 은거하였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다시 기용되어, 사성을 거쳐 사간·태복시정·청풍부사·집의·공조참의·우부승지를 지냈다. 그 뒤 호조참판을 지내고, 지돈녕부사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글씨에 능하였다. 시호는 장정(莊靖)이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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