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벌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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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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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관등.
이칭
이칭
간벌찬, 이벌간(伊罰干), 우벌찬(于伐飡), 각간(角干), 각찬(角粲), 서발한(舒發翰), 서불한(舒弗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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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시대의 관등.
내용

17관등 중의 제1등으로서, 일명 이벌간(伊罰干)·우벌찬(于伐飡)·각간(角干)·각찬(角粲)·서발한(舒發翰)·서불한(舒弗邯)이라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유리이사금 때 제정되었다고 하였으나, 실제는 520년(법흥왕 7)의 율령(律令) 공포 때에 제정된 것으로 생각된다. 진골(眞骨)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관등으로, 공복(公服)의 빛깔은 자색이었다. 뒤에 이벌찬보다 높은 관등으로 대각간(大角干)·태대각간(太大角干) 등이 설치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조선금석총람 상(朝鮮金石總覽 上)』
「고구려·신라의 관계조직(官階組織)의 성립과정」(김철준,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 1956;『한국고대사회연구』, 지식산업사, 1975)
「新羅の十七等の官位成立の年代についての一考察」(曾野壽彦, 『古代硏究』 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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