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범주(李範疇). 1888년(고종 25)까지 가정에서 수학하다가 1895년 고등소학교에서 수학한 뒤 1899년 희릉참봉(禧陵參奉)에 임명되었다. 1906년 서훈3등 태극장을 받았다. 그해 11월 궁내부협판에 임명되었으며, 1907년 봉상사제조에 임명되었다.
1902년 통정대부가 되었으며, 흥양군수·진주군수를 지냈다. 1905년 1월 중추원의관에 임용되었으며, 같은 해 비서원승을 거쳐 판리공사(辦理公使)로 재임하면서 그 해 7월에 일본국시찰사무원이 되어 일본시찰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같은 해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10월 농상공부협판이 되었고, 이듬해에 서훈3등 태극장을 받았다. 그해 11월 궁내부협판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봉상사제조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