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병조참판,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성원(聲遠)
  • 시호충정(忠貞)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인좌의 난|정희량의 난
  • 본관용인(龍仁)
  • 사망 연도1762년(영조 3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조참판|병조참판|한성부판윤|공조판서
  • 출생 연도1684년(숙종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공원영 (중경공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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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참판,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 좌의정 이세백(李世百)의 재종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음보로 기용되어 벼슬길에 올라 평양부윤이 되었는데, 1725년(영조 1) 부정혐의로 관직이 삭거되었다. 그 뒤 성주목사로 기용되었다가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우방장으로 영남에서 기병한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이 되었으며 인평군(仁平君)에 봉하여졌다.

1733년에 동의금·호조참판을 거쳐, 1736년 병조참판을 역임하고, 1738년 공홍도관찰사(公洪道觀察使)로 재직 중 남형을 한 죄로 파직되었다. 1740년 풍덕부사가 되어 군액과람의 폐를 시정하였고 이듬해 한성부좌윤에 전임되었다. 1748년에 부총관(副摠管), 1753년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그 이듬해에 공조판서가 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속조야집요(續朝野輯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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