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참판,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 좌의정 이세백(李世百)의 재종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음보로 기용되어 벼슬길에 올라 평양부윤이 되었는데, 1725년(영조 1) 부정혐의로 관직이 삭거되었다. 그 뒤 성주목사로 기용되었다가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우방장으로 영남에서 기병한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이 되었으며 인평군(仁平君)에 봉하여졌다.
1733년에 동의금·호조참판을 거쳐, 1736년 병조참판을 역임하고, 1738년 공홍도관찰사(公洪道觀察使)로 재직 중 남형을 한 죄로 파직되었다. 1740년 풍덕부사가 되어 군액과람의 폐를 시정하였고 이듬해 한성부좌윤에 전임되었다. 1748년에 부총관(副摠管), 1753년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그 이듬해에 공조판서가 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속조야집요(續朝野輯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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