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정언, 지평,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길선(吉善)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786년(정조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지평|집의
  • 출생 연도1717년(숙종 4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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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지평,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길선(吉善). 이제열(李齊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상엄(李相儼)이다. 아버지는 이정호(李廷虎)이며, 어머니는 김동만(金東萬)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8년(영조 4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지평·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772년(영조 48)에 북로(北路)를 다녀온 뒤, 의주부(義州府)의 비축미가 허위로 기재되고 창고가 고갈된 데 대한 조사를 재촉하였다.

이어 1784년(정조 8)에는 사간으로서 공인(貢人)의 미가(米價) 조종, 군자감의 포흠(逋欠: 조세포탈과 관물의 사사로운 사용), 호남 영주인(營主人)의 삭선사용(朔膳私用: 왕에게 올리는 선물의 사사로운 사용), 무비(武備)와 월과약환(月課藥丸: 각 읍에 부과되는 매달의 화약과 탄환을 만들기 위한 세금)의 변통, 홍문관 권점(圈點)의 폐해 등 7개조에 달하는 혁폐안(革弊案)을 상소하였다.

또 홍낙순(洪樂純) 옥사에 관련된 홍계능(洪啓能)·서형수(徐瀅修) 등의 일로 이조판서인 심풍지(沈豊之)와 상소논쟁이 벌어졌는데, 이를 두고 정조는 정유처분(丁酉處分: 1777년)으로 일단 매듭지어진 이 일을 다시 들추어내어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한다는 뜻으로 영구히 사판(仕版: 관리들의 명단)에서 삭제하도록 명함에 따라 삭직되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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