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신흥강습소 교장, 서로군정서 학무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4년 유하현(柳河縣)에 설치된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의 교장을 역임하였다. 1915년 국내에서 조직된 대한광복회의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을 후원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이에 참여하는 한편, 형 이상룡이 조직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1920년 서간도 지역 외교원에 임명되어 중국정부와의 외교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화룡현(和龍縣) 태랍자(太拉子) 부근에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21년 5월 액목현(額穆縣)에서 서로군정서를 재정비할 때 학무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2월부터는 흑룡강성 탕원현(湯源縣) 오동하서(梧桐河西)에서 농토개척사업에 매진하였다. 1937년 1월 28일 하얼빈[哈爾濱] 취원창(聚源昶)에서 70세로 사망해 그 곳에 안장되었다가, 1990년 국가보훈처에 의해 이상룡·이승화(李承和)·이광민(李光民) 등 재만독립운동가들의 유해와 함께 국내로 봉환되어 10월 13일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안동독립사』(김을동, 명문사, 1985)
- 『석주유고』(이상룡, 고려대학교출판부, 1973)
- 『국외용의조선인명부(國外容疑朝鮮人名簿)』(조선총독부경무국, 1934)
- 「중국 동삼성에 빛나는 항일구국의 혼」(이선우, 『순국』, 199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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