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삼화현령,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8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 대사간에 승진하였다. 이 때 인목대비(仁穆大妃)는 존호를 삭제당하고 서궁(西宮: 경운궁)에 유폐되어 있었는데, 경상도관찰사 윤훤(尹暄)과 충청도관찰사 이춘원(李春元)이 진선장(進膳狀)에서 폐모에 대한 존칭을 그대로 쓴 것을 묵인하여 준 것이 말썽이 되자 사직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이사경의 역량이 널리 인정되어 다시 승지, 병조·예조의 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청렴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우암집(尤庵集)』
- 『송자대전(宋子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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