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성(陽城). 호는 경락(卿輅). 함경남도 정평 출생.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혔으며, 1919년에 한격순(韓格順)과 혼인하였다.
1921년에 중국유학을 떠나 베이징의 안후이중학[安徽中學]에 입학, 톈진[天津] 난카이중학[南開中學]에 편입하였다가 1925년 고급1학년 수료자격으로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예과에 응시, 합격하였다.
1927년 베이징대학 철학과에 입학, 1931년 졸업한 뒤 귀국하였다. 1932년 경성외국어학원 강사가 되었다가 다음 해 경성주재 중국총영사관에서 한문비서(韓文秘書)가 되어 1945년까지 재직하기도 하였다. 1934년부터 1940년까지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위촉되었다.
1945년 한중문화협회(韓中文化協會)를 창설하여 기관지 『한중문화(韓中文化)』를 발간하였으며, 그 해 우익정당조직에 참가하였다가 정치활동에 뜻을 버리고 보성전문학교에 돌아와 1946년부터 퇴임하던 1970년까지 재직하였다.
이 기간 중 1952년부터 1960년까지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장을 지냈고, 1956년 중국학회를 조직, 초대회장에 임명되어 1962년까지 재임하였다.
1956년 미국무성초청 교환교수로 도미하여 하버드·예일대학 등에서 동서비교철학을 연구하고 돌아와, 고려대학교 부설 아시아문제연구소장에 취임하여 1969년까지 13년간 재직하면서 이 연구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요 사회활동으로는 한글전용반대운동을 벌인 바 있으며, 1960년 3·15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재경교수단궐기대회 소집인의 일원으로 시국선언문 기초, 교수단 시위에 앞장서서 5·16군사정변 후에는 정치교수명단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중국철학연구에 힘을 기울여 중국철학의 현대적 의의를 모색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60년 학술원 추천회원에 임명되고, 그 해 한국휴머니스트회 회장이 되었으며, 1962년 58세 때 고려대학교로부터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3년에는 한중협회호적장학금관리위원, 갑오혁명기념사업협회 이사와 부회장에 추천되었다.
저서로는 『현대와 동양사상』(1963)·『퇴계의 생애와 사상』(1973)·『유학(儒學)과 동양문화』(1976) 등이 있고, <맹자의 성선설에 관한 연구>(1955)·<휴머니즘에서 본 유교사상>(1961) 외 많은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