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행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영암군수,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중길(仲吉)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정묘호란
  • 본관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 사망 연도1637년(인조 1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균관전적|영암군수|공조참의
  • 출생 연도1576년(선조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영암군수,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중길(仲吉). 아버지는 성천부사 이경천(李慶千)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3년(선조 36)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보로 태릉참봉에 제수되고, 160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한 뒤 정인홍(鄭仁弘) 등 대북파가 유영경(柳永慶) 등 소북세력을 숙청할 때 소북파로 몰려, 삭직되어 10여년간 등용되지 못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봉교(奉敎)가 되고, 이어 성균관전적에 승진되었으며, 봉상판관(奉常判官)·종묘령(宗廟令)·광흥수(廣興守)를 거쳐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분조(分朝)에 호종하였다.

괴산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고, 유효립(柳孝立)에 관계된 모역의 당을 잡아들인 공으로 통정계(通政階)에 오르고, 영사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그 뒤 영암군수로 나갔다가 1632년 공조참의로 승진되었다.

그 때 명나라 사신으로 가는 사람들은 육로가 막혀서 뱃길을 이용하였는데, 모두 가기를 꺼려하였지만 이선행만은 1년만에 다녀왔다. 이듬해 회양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임기를 무사히 마쳤으나 그 고을 사람들의 탄원으로 유임되었으며, 암행어사의 보고에 1등으로 뽑혀 상작(賞爵)을 받았으나 임지에서 죽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염헌집(恬軒集)』(임상원(任相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