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Ross,J.)와 백홍준(白鴻俊) 등의 한국어 번역으로 알려져 있다. 1887년 만주 심양(瀋陽)에서 발간되었다. 로스는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의 목사로서 1872년 이래로 만주에서 선교하였고, 특히 한국의 선교를 구상하여 만주 동북지방에 있던 한국인들의 촌락을 다니면서 전도하여 최초의 한국인 신자들을 얻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유식한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1877년부터 『신약성서』의 한글 번역을 시작했는데, 그들은 서상륜(徐相崙)·이응찬(李應贊)·백홍준·김진기(金鎭基)·이성하(李成夏) 및 이익세(李益世) 등이었다. 로스는 성서의 한글 번역을 위해 우선 자신이 이들에게서 한글을 배워야 했고, 이들은 우선 한문 성서를 가지고 연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82년 가을에 처음으로 『예수셩교누가복음전셔』와 『예수셩교요안ᄂᆡ복음젼셔』를 각각 낱권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인쇄기는 상해로부터 사들였고, 한글 활자는 그의 한국인 도역자들이 만든 목활자를 일본에 보내어 4만여 자의 아연활자로 만들어서 1881년 봉천(奉天:지금의 심양)에 설치하였다. 출판소는 심양의 문광서원이었다.
로스는 그와 매부관계인 선교 동역자 매킨타이어(MacIntyre,J.)의 협력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하여 번역한 낱 복음서들을 만주의 한국인 교회에 널리 반포하면서 계속 번역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1883년에는 『예수셩교젼서말코복음』을, 그 이듬해에는 『예수셩교젼서마ᄃᆡ복음』을 간행하였고, 서상륜은 이 성서들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 고향인 황해도 솔내[松川]에서 전도함으로써 1884년 최초의 한국인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 뒤 번역을 계속했는데 로스가 안식년으로 본국에 귀국한 동안에 매킨타이어는 번역 원고들을 네 차례씩 원어 성서와 대조해 가면서 번역을 수정하였다. 드디어 『신약성서』가 완역되었을 때 로스는 영국 성서공회와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재정 원조를 얻어서 이를 발행하게 되었다.
이것이 한글 성서로는 최초로 간행된 것이요, 한국에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이 성서의 한글 번역을 시작하여 『신약전서』를 발행한 해(1900년 5월)보다 13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로스 역의 『예수셩교젼셔』가 한국에 일찍 들어와서 널리 읽히게 되었고, 외래 선교사들의 한글 공부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또 이 책은 한글 연구의 한 역사적 자료로도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기독교가 선교되는 곳에는 어디서나 성서의 방역(邦譯:國譯)이 반드시 이루어져 그 나라의 국문학 발달에 기여하게 되었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였다. 성서의 한국어 번역으로 생긴 새 어휘들도 나타나게 되었고, 그것들이 보급되어 통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