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경주교회와 전주 서문교회에서 목회한 장로교 목사이자 정치인.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21년 7월 전주 서문밖교회(현, 서문교회)로 옮겨 15년간 시무하면서 1932년과 1936년 전북노회장을 역임하였고 전주유치원과 전주여자야학원, 전주고아원, 숭덕학교, 생민중학원 등을 설립하였다. 1927년 신간회의 전주 지부장으로 활동했고 1928년 강순명, 신현창 등과 ‘독신전도단(獨身傳道團)’을 창설하여 복음 전도와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6년 5월 건강 문제로 교회를 사임한 후 목회에 복귀하지 못했다.
해방 후 1946년 6월 서울 승동교회에서 개최된 조선예수교장로회 남부총회 회장으로 추대되었지만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어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한국민족대표자회의 조직에 참여하였고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장을 역임했다.
1948년 5월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전주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1948년 대한국민당 창건을 주도하고 최고위원이 되었지만 그해 9월 고시위원장에 임명되면서 탈당했다. 1949년~1951년 전국애국단체연합회 부회장, 민족진영강화위원회 상무위원, 구국총력연맹 부위원장, 국토통일촉진국민대회 준비위원회 대표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1952년 2월 경상북도 달성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당선되었으며 자유당으로 당적을 바꾸어 중앙위원을 지냈다.
이후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달성군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1956년 4월 공화당 창당 때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지만 두 달 만에 탈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갑 무소속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참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였다.
1966년 2월 5일 대구시 방촌동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사상과 작품
참고문헌
단행본
- 김수진, 『총회를 섬겨온 일꾼들』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 배민수, 『나는 왜 싸웠나』 (일한도서, 1955)
- 『전주서문교회 백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전주서문교회, 199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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