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19년 3월 1일부터 4월 초순에 걸쳐 평안남도 평양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내용
시위 군중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났다. 군중에게는 선언서와 태극기가 공급되었다. 상인들도 철시하고 시위에 가담했으며, 보통학교 학생들도 합류했다. 여기에 학교별로, 동네별로 조직된 시위 군중이 시내로 진출하면서 오후 7시 경에는 낮의 배나 되는 군중이 평양경찰서 앞에 모여들었다.
시위 군중이 경찰의 발포로 해산한 후에도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만세 시위가 계속되었다. 다음날부터 경찰은 30여 명의 목사를 체포하는 등 검거 선풍을 일으켰다. 평양 시내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공포 분위기 속에서도 3월 2일부터 9일까지 크고 작은 시위가 매일 벌어졌다. 3일에는 여학생들이 주도한 시위가 일어났다. 4일에는 평양 시내 중등학교 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일으켰다. 6일에는 장수원, 태평리, 현교리, 평천리, 오야리 등에서 연인원 1만여 명이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 3월 26일과 4월 1일에도 만세 시위가 이어졌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독립운동사자료집』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3․1운동Ⅰ-중부·북부』(김정인·이정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독립운동사』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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