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경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경기도지부장을 역임하며 임시정부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98년(고종 35) 2월 21일
사망 연도
1997년 8월 11일
출생지
서울
관련 사건
대한민국애국부인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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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경기도지부장을 역임하며 임시정부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개설

신의경(辛義卿)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1919년 6월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가 통합된 단체로, 대한민국청년외교단 및 대한적십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던 여성단체였다.

1919년 4월에 기독교인이자 정신여학교 동창인 오현관(吳玄觀)·오현주(吳玄洲) 자매와 이정숙(李貞淑) 등 3인은 정신여학교 학생과 지식인을 규합하여 혈성단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혈성단애국부인회는 3·1운동으로 죽음을 당한 희생자의 유족과 구속자를 돕는 일에 나섰다. 같은 달에 최숙자(崔淑子)·백성현(白性玄)·김원경(金元慶)·경하순(褻河順)·김희열(金熙烈)·김희옥(金熙玉) 등은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나섰다. 1919년 6월 혈성단애국인회와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는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총무인 이병철(李秉澈)과 임창준(林昌俊)의 중개로 통합을 결정하고 이름을 대한민국애국부인회라 지었다.

생애

신의경은 1898년 2월 21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정신여학교와 이화여전 문과 및 일본 도호꾸대학(東北大學) 문과를 졸업하였다. 정신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1919년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1997년 8월 11일에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창립이후 오현관을 총재 겸 재무부장으로 선출한 뒤 점차 지방으로 조직을 확대하여 평양·대구·개성·진주·기장·밀양·거창·통영·양산·울산·부산·마산·군산·회령·정평·목포·전주·광주(光州)·여수 등에 지부를 설치하고 지부장을 임명하였다. 주요 임무는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3·1운동 때 감금되었던 여성 지도자들이 석방되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1919년 10월 19일에 열린 김마리아(金瑪利亞)·황애시덕(黃愛施德)의 출옥 축하회에서는 본부와 지부 관련 규칙을 새롭게 만들고 간부를 개선하였다. 회장에는 김마리아가 선출되었으며, 신의경은 서기 및 경기도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김마리아 등은 결사부(決死部)와 적십자부(赤十字部)를 신설하고 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였다. 또한 본부와 지부를 통해 임시정부 국내 연통부(聯通府)와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대한총지부(大韓總支部)의 역할을 대행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힘쓴 결과 임시정부에 6000원을 송금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19년 11월에 경상북도에서 발각되면서 대부분의 지도자가 대한민국청년단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신의경 역시 검거되어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4권(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독립운동사자료집』 제9권(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판결문」(대구지방법원, 1920.6.29)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20.12.27)
『여성운동』(박용옥,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독립운동사』 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집필자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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