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 3·1운동

  • 역사
  • 사건
  • 일제강점기
1919년 3월 중순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6년
  • 김정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19년 3월 중순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내용

3월 10일에 성진면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는 그리어슨(Robert Grierson, 具禮善) 목사가 운영하는 욱정교회 기독교인들이 준비했다. 강학린(姜鶴麟)·안성윤(安聖允)·이효근(李孝根)·서유진(徐有珍)·배민수(裵敏洙) 등이 주동이 되어 3월 7일 그레이스 목사관 구내에서 독립선언서 및 격문 3만매를 인쇄했다.

3월 10일 오전 10시 그리어슨 목사가 운영하는 제동병원 앞에 5000여 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시위 군중은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가를 행진했다. 시위는 오후에도 이어졌다. 기독교계 보신학교 학생 40여 명이 일본인 상가, 경찰서, 우체국 앞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기독교인 200여 명도 학생 시위대를 따랐다. 밤 11시 경에는 임명면 농장동에서 보신학교 교사 2명이 주동이 되어 기독교인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인 3월 11일 오전 10시에도 700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제동병원 앞에 모여 만세 시위를 벌였다. 시위 군중이 시가를 행진하던 중 경찰의 발포로 1명이 즉사했다. 이날 오후 보신학교 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성진면의 시위 소식을 들은 학동면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학동면의 시위는 4일간 계속되었다. 학동면 허씨(許氏) 문중에서는 3월 12, 13일 양일간에 걸쳐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세를 불렀다. 3월 14일에는 하천동에서 200여 명이 산 위에 올라가 종과 북을 치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학성면에서는 3월 12일에 250여 명이 산위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불렀다.

의의와 평가

성진삼일운동은 기독교계에서 주도했다는 특징을 가지며, 3월 10일 성진면의 시위는 함경북도 각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을 촉발하는 뇌관 역할을 했다. 이 날을 시작으로 길주·명천·경성·청진 등의 주요 도시는 물론 각 군·면에서 만세 시위가 이어졌다.

참고문헌

  • -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 『3․1운동Ⅰ-중부․북부』(김정인·이정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 『독립운동사』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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