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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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참의원 합동 개원식
민.참의원 합동 개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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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의 양원제 입법부에서 상원에 해당했던 일원(一院). 참의원은 발췌개헌 이후의 제1공화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으나 한번도 실제로 구성된 적은 없었고, 제2공화국에서 구성되었다가 5·16군사정변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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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제2공화국의 양원제 입법부에서 상원에 해당했던 일원(一院). 참의원은 발췌개헌 이후의 제1공화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으나 한번도 실제로 구성된 적은 없었고, 제2공화국에서 구성되었다가 5·16군사정변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내용

양원제 입법부의 상원은 시대나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누어지지만, 대체로 영국이나 일본의 귀족원(貴族院)과 같이 상류계층의 특권과 우위를 보존하는 신분제적 색채를 농후하게 띠는 경우와 연방국가인 경우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 또는 지분국(支分國)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미국형의 상원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연방국가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신분제적인 상원의 의의가 점차 희박해지는 반면, 양원제는 점차 헌법상의 기능적인 차이로 변해 가고 있다.

따라서 양원이 다 같이 국민의 직접·비밀·보통·평등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으나, 선거구·임기·의원정수·개선방법(改選方法)·권한 등에서 차이가 있는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참의원제도는 단원제의 폐단을 억제하려는 민주제형으로서 헌법명문상으로는 1952년 7월 4일 통과된 발췌개헌, 즉 1차 개헌에서부터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 헌법개정 자체가 정치적 선진화를 기하려는 노력이기보다는 오히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장기집권 포석을 은폐하기 위한 연막이었기 때문에 자유당 집권 동안은 참의원이 구성되지 않았고 민의원에 의하여 그 권한이 대행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양원제 의회의 상원으로서 참의원이 구성된 것은 제2공화국에서였다. 3·15 정·부통령 선거부정 규탄에서 시작된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 과도정부하에서 국회는 헌법개정에 착수하여 1960년 6월 15일 내각책임제에 입각한 개정헌법을 공포하였다.

이 헌법에 따라서 국회의원 선거에 적용된 <국회의원선거법>은 그 해 6월 23일 법률로서 공포되었고, 7월 29일 총선거에서 민의원과 더불어 참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참의원 구성의 방법은 중선거구에 정원은 민의원 정원의 4분의 1을 초과하지 않는 것이었고, 개선방법으로는 임기 6년의 의원을 3년마다 2분의 1씩 개선하게 하였으며, 피선자격을 30세 이상으로 하였다. 민의원이 해산하는 경우에는 동시에 폐회되나 국무총리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국회대행권을 갖게 하였다.

또한, 양원의 권한에 있어서는 이 헌법이 의원내각제에 입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의원의 권한이 압도적으로 우월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참의원은 국무총리의 지명에 대한 동의권 또는 국무총리의 선출권을 갖지 못하였고, 국무원(國務院)에 대한 불신임권도 갖지 못하였다.

또한, 법률안과 예산안도 민의원에 먼저 제출되었다. 그러나 참의원은 민의원이 갖지 않은 헌법재판소 심판관의 3분의 1에 대한 선출권을 가졌다. 이상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성립된 초대 참의원은 58명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제2공화국의 양원제 입법부는 당시의 정국을 주도한 민주당의 당내 갈등, 군소정당의 난립, 사회의 부패, 공산세력의 침투, 4·19혁명의 후유증 등으로 제대로 정착할 시간적 여유도 가지지 못한 채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으로 9개월 만에 해산되고, 또 헌법이 개정되어 다시 입법부는 단원제로 환원되었다.

따라서 의정사상(議政史上) 최초로 구성되었던 참의원은 단명으로 끝났으므로 그 기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신헌법』(박일경, 삼중당, 1963)
『헌법』(한태연, 법문사, 1963)
『현대의회정치론』(최요환, 박영사, 1965)
『대한민국선거사』 1(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73)
『한국정당정치론』(김민하, 교문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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