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해천(海天). 경상북도 울진(蔚珍) 출신. 1934년 평양의 광성 고등보통학교(光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 경도(京都)의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 신학부를 나온 뒤 1955년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1946년부터 재직하여온 감리교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로 다시 활동하면서 대학원장·학장직을 맡았고, 1960년부터 1975년까지 국제종교사학회(國際宗敎史學會) 실행위원, 한국종교사학회 회장, 한국기독교학회 회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이사 등을 지냈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강화·이천 등지에서 감리교회 목사로 시무하기도 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신학의 토착화를 강조하는 독특한 신학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기독교와 한국사상』(1964)·『다석(多夕)한국적 신학』(1976) 등의 저서와, 「단군신화는 Vestigium Trinitas이다」(1963)·「신학방법서설」(1961) 등의 논문이 있다. 자유주의 신학사상의 대표적 흐름인 토착화 이론의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으며, 감리교신학대학의 토착 신학적 학풍을 형성하여 놓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