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신학 잡지인 『신학월보(神學月報)』를 흡수하여 발간한 것이다. 『신학월보(神學月報)』는 목사 후보생과 평신도들을 신학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하여 감리교회에서 1900년 12월에 발행되었다. 편집책임자는 존스(Jones, G. H., 趙元始) 목사, 부책임자는 최병헌(崔炳憲)이었고, 편집 방침은 웨슬리(Wesley, J.)의 신학 전통에 따라 경건 주의적 자유주의 신학 노선을 폈다.
따라서 자유로운 신학적 해석과 고등 비판을 용인했으며, 다양한 신학적 전통을 전개시켰다. 특기 할 만한 점은 최병헌의 「죄의 도리」·「사교고략(四敎考略)」 등의 신학논문이 실려 있어 그 이전부터 한국인에 의한 기독교 토착화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16년 2월에 감리교신학대학의 전신인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 교수회의의 결의로 학술지가 나옴에 따라 이에 병합되었다. 『신학세계』는 계간으로 발행되었고, 신학연구논문만이 아니라 국내외의 교계소식(敎界消息)도 싣고 있다.
이 잡지는 당시 한국 교회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대변지로서 뚜렷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1932년에 정경옥(鄭景玉)에 의해 바르트(Barth,K.)의 신학이 소개되는 등 첨단 신학자의 학설이 소개되었다. 또한 한국적 신학의 형성과 신학의 토착화에도 중요한 공헌을 했으며, 최병헌은 동양사상과 기독교사상을 비교, 연구하여 종교변증설(宗敎辨證說)을 연재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40년 감리교신학교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됨에 따라 폐간되었는데, 광복 후에도 정치적 와중에서 미처 복간되지 못하다가 1952년 10월에 속간되었다. 현재는 명칭을 『신학과 세계』로 고쳐 계속 발행되고 있다.